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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세제(洗劑) 이야기


역사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은 노르웨이의 헨릭 입센의 대표적인 희곡인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인 ‘노라’가 자기 인생을 위해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1897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인형의 집’의 초연을 계기로 여성해방운동은 세계 각지에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하였고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도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유사 이래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려웠던 이유는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가사노동과 잦은 임신 탓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속화된 기술혁명과 과학의 발전은 가전제품이라는 발명을 통하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특히 세탁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하루 종일 하여도 끝나지 않던 세탁일로부터 여성들은 해방감을 만끽하였고 그럴 즈음에 나타난 ‘노라’의 예상을 뒤엎는 가출선언은 여성들의 가슴에 해방이라는 불씨를 피운 것이 아닌가 싶다.

인류가 세탁을 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당시의 세탁은 일종의 종교적인 의식의 하나로서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목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옷을 세탁했다고 한다. 세탁물을 돌이나 나무판에 옷을 문질러 빠는 손세탁의 기록은 BC 2,000년경 고대 벽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류가 옷다운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세탁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로마시대에서는 현재의 세탁소와는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전문업자가 따로 있어 세탁을 맡아서 했으며 귀족들은 세탁만 전문으로 하는 노예를 고용하거나 집안에서 발로 밟아 빨 수 있는 재래식 설비를 갖추어 두기도 했다.

근대적 개념의 세탁기의 원조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전인 1851년 미국의 제임스 킹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실린더식 세탁기였다. 증기로 움직이는 이 세탁기는 증기기관이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펌프를 돌려 작동하는 원리였는데 발생하는 증기는 옷의 주름을 펴는 다림질에 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흡입장치와 압착장치가 알칼리 세제 용기 안의 세탁물을 상하로 움직이고 빨랫감이 서로 마찰되어 세탁하는 방식이라 세탁효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발전을 거듭하여 1908년 미국 시카고의 한 기계회사에서 근무하던 알바 피셔라는 발명가에 의해 전기세탁기가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잦은 고장과 소음으로 쉽게 대중화가 되기는 어려웠지만 개선을 거듭한 끝에 19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즈음하여 본격적으로 현재 사용하는 형태의 세탁기가 세계 각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금성사에서 최초로 전기세탁기를 생산, 판매하였는데 그 당시 집에 세탁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세탁기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능케 한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한다면 세탁에 필요한 세제 역시 여성의 인권신장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물로만 세탁을 하던 시절에도 물의 세정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높일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빗물이 일반상수보다 세탁에 적합하고 더운 물이 찬물보다 세정력이 우수하고 어떤 첨가물을 넣으면 세탁이 더 잘된다는 것을 다양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더욱 더 깨끗하게 빨기 위하여 원시적인 세제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짚이나 뽕나무, 기타 초목을 태운 재를 걸러서 얻은 잿물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명주와 같이 귀한 직물을 빨 때는 콩, 팥, 녹두 등을 갈아 만든 가루를 빨래에 비벼서 쓰기도 하였다.

한편 고대 이집트인들은 소다회라고 불리는 탄산나트륨을 세제로 사용하였으며 물을 부드럽게 하여 빨래가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경수 연화제(Water Softener)로 규산나트륨을 사용하였다는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1878년 독일의 대표적인 세제회사인 헨켈 (Henkel)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분말 세제인 ‘브레이크소다 (Bleichsoda)’는 바로 이 두 원료를 주성분으로 하여 제조한 제품이었으니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의 지혜가 현재까지 세탁용 세제의 기본 성분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성분들은 물에 함유된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을 침적시켜 경수 연화작용을 나타내고 세탁물을 누렇게 만드는 금속염을 동시에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여 당시에는 획기적이고 주부들의 사랑을 받던 제품이었다.

헨켈사는 이어 1907년에 세계 최초로 비누역할을 하는 천연 계면활성제가 함유된 세탁 세제인 ‘페르실 (Persil)’을 발매하였는데 비누가 함유되어서인지 더욱 탁월해진 세정력 덕분에 그 당시에 인기가 많은 제품이었다고 한다.

천연 계면활성제가 세제의 원료로 사용되던 시기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게 되는데 연합군에 의해 무역봉쇄를 당하면서 천연 계면활성제의 원료로 쓰이던 동, 식물의 유지 (油脂)가 폭약 제조용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천연 계면활성제인 비누의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러자 독일의 과학자들은 군수용품 용도로 쓰여 늘 부족하기만 하던 유지 대신 석탄과 석유에서 얻은 알킬 설페이트(Alkyl Sulfate)라는 화합물을 합성하여 비누 대용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합성 계면활성제이다.

독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합성 계면활성제의 아이디어는 미국이 석유화학공업으로부터 얻어낸 알킬 벤젠을 원료로 사용하여 획기적으로 개량된 가정용 세제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에 보급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유지 고갈에 당면한 독일과 미국은 더욱 우수한 합성 세제를 발명하는데 경쟁하였고 1946년 P&G사는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타이드 (Tide)’라고 하는 합성세제 제품을 발매하였다. 경수에서는 빨래가 잘 빨리지 않는 기존 세제와는 달리 P&G사의‘타이드’는 경수, 연수와 상관없이 잘 빨리면서도 소량으로 첨가된 표백제나 형광색소가 세탁물을 더욱 더 희게 만들어주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P&G사가 있게 한 효자상품이 되었다.

한편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덴마크의 노보(Novo)사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세탁물의 때는 일반적인 세제로는 완벽하게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첨가하여 주면 세탁물의 때를 완벽하게 제거 할 수 있음에 착안, 미생물 배양방법으로 ‘알칼레이스(Alkalase)’라고 하는 효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성공, 세탁 세제에 본격적으로 응용하기 시작하였고 노보사는 이 분야에 있어서 독보적인 명성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 단백질 분해효소는 내알칼리성이 강하고 약 65도의 고온 세탁에서도 충분하게 효소의 활성을 나타내어 때가 낀 흰 빨래를 빨면 하얗게 되는 획기적인 세탁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세제에 포함되어 있는 이러한 단백질 효소들은 따뜻할수록 기능을 잘하고 약 37도에서 최적의 활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세탁하는 물의 온도가 어느 정도 미지근하여야 효소가 제대로 활성을 나타내므로 찬물에 빨래를 할 경우에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결점이 약 30년간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독일 헤센 주에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인 브레인사와 헨켈사가 공동으로 매우 차가운 물에서도 때가 잘 빠지는 세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찬물 세제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연구는 2005년부터 헨켈사의 카를 하인츠 마우러 박사팀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조만간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 두 회사는 지금까지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극한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이 극한 미생물이 생성하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세탁할 때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연구대상의 미생물들은 남극처럼 일반 미생물은 살 수 없는 0도 이하의 온도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미생물이 생산하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세제에 적용하여 보자는 아이디어이다. 현재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에너지 절약이 다방면에서 연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탁할 때에 물의 온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 방지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헨켈사는 이미 추운 온도에서도 활성을 가지는 미생물을 분리, 동정하여 놓은 상태이고 유전자분석 방법인 메타게놈 방법으로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수 십여 개의 효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찬물 세제 프로젝트’에 참가한 연구자 이외에도 0도 이하의 차가운 물속에서도 생존하는 극한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어 앞으로 의약품의 개발, 고무의 탄성력 증가 등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세탁할 때에 따뜻한 물만 사용하지 않더라도 즉, 세탁하는 물의 온도를 15도에서 5도로 낮추기만 하여도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에너지를 크게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왜냐하면 후진국의 많은 나라들이 앞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세탁기 사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찬물로 세탁을 하면 옷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한 바이오 벤처기업은 무당거미라고 하는 곤충의 뱃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에서 특이한 단백질 분해효소를 발견하여 세탁 세제에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단백질 분해효소들은 비누 역할을 위해 넣는 음이온 계면활성제에서 주로 활성을 가지는데 이 회사가 무당거미의 뱃속에서 발견한 미생물의 효소는 음이온, 양이온 모두의 계면활성제에서 탁월한 활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토피를 포함한 많은 만성 피부질환이 음이온 계면활성제의 남용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많은 세제 전문회사들이 양이온 계면활성제를 기본으로 하는 세제를 함부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들어가는 원료의 단가도 문제지만 양이온 계면활성제의 조건에서 활성을 나타내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마땅한 것이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한 바이오 벤처기업이 곤충의 뱃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에서 발견한 효소가 어쩌면 세탁 세제의 역사를 새로이 고쳐 쓸 수 있을 지가 흥미롭다. 더 나가 아토피로 고생하는 엄마들에게 진정한 여성 해방을 안겨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연구 결과에 기존의 세제회사보다 더 관심이 간다 하겠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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