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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탈크 파동 유감


1890년 어느 날 미국에서 환자 한 명이 끈적거리는 고약 때문에 피부에 생각지도 않은 염증이 생겼다고 담당의사에게 불평을 하소연하였다. 담당의사는 해당 회사인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의 프레드 킬머라는 연구원에게 그러한 내용을 편지에 담아 해결책을 문의하게 된다. 킬머는 어떻게 하면 붙이는 약의 끈적거림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고 결국 이태리산 탈크 가루가 들어 있는 작은 통 하나를 환자에게 보내주게 된다.

그런데 환자의 반응이 예상 외로 좋았고 여기서 힌트를 얻은 존슨 앤 존슨은 고약을 팔 때에 탈크 분말도 함께 팔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는 탈크 분말이 가지는 뛰어난 흡습력을 강조한 독립적인 제품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로서 존슨 앤 존슨의 대표적인 장수 품목인 베이비 파우더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름이 낯설어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광물로 여겨지겠지만 베이비 파우더의 주성분인 탈크(Talc)는 실은 우리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닌 광물이다. 표면이 미끄럽고 반들거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활석(滑石)이라고 하고 선사시대의 벽화 등 그림을 그리는데도 쓰였기 때문에 화석(畵石)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광물학자 모스(Mohs)는 광물을 경도에 따라 1에서 10까지 분류를 하였는데 활석은 모스 경도 1에 해당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른 광석으로 손톱으로 긁어도 흠집이 생길 정도로 물러 서구에서는 비누석(Soapston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활석은 주로 사문암(蛇紋岩)이 땅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섬유상으로 변성되면서 얻어지는데 천연에서 채광한 활석에는 사문암에 있던 석면이 함께 존재하곤 한다.

이러한 연유로 가공을 철저히 하지 않을 경우에는 탈크를 원료로 하는 제품에 석면이 혼입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4월 내내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탈크 파동은 바로 천연 활석을 채취하면 필연적으로 함께 얻어지는 석면과 섬유상 활석에 기인한 것이다.

활석의 용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양복 재단이나 용접에 사용하는 석필(石筆)뿐만 아니라 물에 젖으면 비누와 같은 촉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화장실, 부엌 등에서 고급 건축 마감재로도 활용된다. 또한 활석이 가지는 높은 열에 대한 충격저항성과 고온에서의 높은 전기저항성 때문에 고주파 절연체 등에 이용된다.

활석을 가루로 만든 탈크 파우더의 용도는 활석 자체보다도 더욱 다양한데 탈크 파우더는 지난 100년간 안전한 천연 소재로 여겨져 화장품, 의약품 등에 널리 사용되어온 천연소재이다. 현재 사용되는 탈크 파우더는 활석을 보통 300메쉬 이상의 고운 입자로 갈아 사용하는데 파운데이션이나 베이비 파우더 등의 화장품의 원료 이외에 정제나 캅셀의 제조 과정에서 분말 성분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활택제(滑澤劑)나 부형제로 제약산업에서는 꽤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또한 지구온난화 방지용 시멘트 원료로 탈크 파우더를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하는데 백색의 광물성 황산규산마그네슘과 소량의 규산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진 탈크 파우더를 시멘트의 원료로 사용하면 양생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탈크 파우더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과 섬유상 탈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난 4월 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아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그야말로 잔인한 4월을 겪고 있다. 멜라민 우유 파동의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시점에서 연타석으로 터진 메머드급 뉴스에 특히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식약청이 이미 5년 전부터 선진국들의 관련 성분의 규제법안을 통하여 그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국영방송국의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의 방영 이후에 부랴부랴 대응하였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탈크 중 석면에 대한 관리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산품 등을 포함한 일반제품에 대한 석면 검출 기준도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만 규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베이비 파우더에 들어 있는 석면 탈크의 유해성은 2004년에 한 대학의 교수가 식약청에 제출한 ‘기능성화장품의 안전성 평가연구’라는 연구용역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는데 이 보고서는 탈크 등을 "외국에서 사용 금지되거나 문제시돼 이른 시일 내에 안전성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원료"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웃 일본에서도 이미 1987년에 석면 탈크는 떠들썩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유럽연합은 2005년 탈크에서 석면 성분이 검출되어서는 안되는 기준을 제정하였고 미국도 뒤질세라 2006년에 탈크의 석면 성분 규제에 동참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석면과 섬유상 탈크가 들어있지 않은 탈크 파우더 자체는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해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무튼 식약청으로 제출된 2004년의 연구용역 보고서와 2005년 유럽연합의 기준 제정, 2006년 미국의 관련 규제 등 3번이나 있었던 기회를 잘 파악하기만 하였더라도 식약청은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훌륭히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나라 보건 당국의 무사안일 일 처리방식과 늑장 대처로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결과적으로 유럽연합의 아이들보다 3~4년 정도 길게 발암물질에 노출된 셈이 된 것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호흡을 통해 이 가루를 들이키게 되면 폐암이나 석면폐증, 늑막이나 흉막에 암이 생기는 악성종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국제암연구소는 이번에 문제가 된 석면 탈크 또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베이비 파우더에 함유된 석면의 경우 바르는 과정에서 호흡기를 통해 흡입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습진이나 아토피 등의 상처 난 피부에 바를 경우 상처를 통해 피부 진피층에 침투해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피부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석면은 그 심각한 위험성 때문에 2009년 1월 1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건축자재 등의 제품은 제조, 수입, 사용이 금지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에 관하여서는 관련 규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아무튼 이번 일련의 탈크 파동을 통해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몇 가지 교훈이 있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에 관계부처의 신속하고 능동적인 대처방안의 수립과 관계자의 책임과 권한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식약청과 전문가들이 그런 위험성을 충분히 일찍 파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은 정부의 문제 해결 방법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보인다.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졌던 탈크 파우더의 위험성을 식약청이 무시했던 이유를 밝혀내고 제2의 탈크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탈크 원료가 들어가 강제 회수가 이루어진 품목은 의약품만 놓고 보더라도 무려 1천 100여 개 품목이고 시가로는 2천억 원 이상이라고 하는데 가뜩이나 힘든 국내 제약산업의 환경을 고려하면 제약업계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고 여겨진다.

둘째, 정확한 보건 의료정보 전달의 필요성이다. 국제암연구소의 경고는 섬유상 탈크와 석면을 장기간에 걸쳐 흡입하면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의미이지 그런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 화장품이나 베이비 파우더를 사용했다고 반드시 암에 걸리게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게 보건의료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능과 조직을 식약청에 부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 국민의 건강을 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관계부처인 식약청의 일년 예산은 대한민국 정부 일년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예산으로는 보건의료정보의 전달은 고사하고 고유 기능인 사전 안전관리도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데 획기적인 예산의 증액과 과감한 조직개편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야기된 문제를 제기할 때에 방법론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이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고 공익이 요구되는 제보가 아무리 국영방송국이라 하더라도 방송사나 언론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마녀사냥식으로 국민에게 직접 공개되고 국민이 알아서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는 방식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으며 진정한 의미에서도 언론의 자유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지난 4월 초 베이비 파우더에서 시작된 탈크 파동은 의약품시장을 초토화하고 화장품시장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화장품에서 끝나기에는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탈크를 사용하고 있어 그 불길이 어디로 번질지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 부품 중 에어백이 아닌가 싶다. 에어백이 터지고 나서 운전자가 뒤집어 쓰는 흰색의 분말은 옥수수 전분 또는 탈크 분말이라고 하는데 에어백이 터지는 과정에서 잘 튀어 나오게 하는 활택작용을 한다. 자동차산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의약품용 탈크 가루를 썼을 리 만무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베이비 파우더가 가뜩이나 힘든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연유로 식약청의 늑장대응이 발암물질인 석면보다 더 두렵게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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