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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의 인터넷 세상]메신저와 죄수의 딜레마


1997년 영화 '접속'이 개봉했을 당시 PC통신을 통해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을 보면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남녀가 어떻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의아해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인간관계에 있어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만남'을 가져야 하며, 대화를 할 때에도 귀를 기울여 집중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스처를 통해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11년 남짓이 지난 지금에는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그 형태도 전 세계 누구나 실시간으로 문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로 바뀌면서 또 다른 소통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메신저는 언제 어디서나 동료, 친구, 업무관계자 등으로 얽힌 상대방을 불러내 간편하게 문자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기능상 장점이 있다. 또 문자로만 대화를 하기 때문에 대면(對面) 접촉과는 달리 상대방의 통제·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화명'을 통해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한 뒤 화젯거리를 찾아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들도 매력으로 작용하면서 누구나 이용 가능한 소통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기능들로 현재 메신저는 1:1 대화 뿐만 아니라 파일 전달, 집단 토론까지 가능한 첨단 IT 기술로 진화하면서 거래·정보공유·인맥관리 등 매우 쓰임새가 유용한 비즈니스 도구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서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의사를 전달하면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어 업무시간 단축 등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많은 기업에서 의사 소통도 메신저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공지사항 전달에서부터 다자회의, 업무 지시 등으로까지 활용폭도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메신저가 업무 용도나 비즈니스 목적에 맞게 온전히 이용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깜빡이는 알림창은 집중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나 지인 등 개인적인 이야기로 업무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특히 집중적 대화를 필요로 하는 비즈니스 상황에서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메신저에 즉각적인 반응에 대응하는 순발력만 강조하다 보면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낸다는 것이 대화상대를 잘못 지정하여 업무 관계자에게 보내 서로 난처해지는 에피소드를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보지 않았던가.

A사 김 과장과 B사 이 대리가 메신저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서로 빨리 비즈니스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둘의 대화 내용은 수시로 멈추게 마련이다. 김 과장은 대여섯 개의 창을 띄워놓고 멀티 대화를 시도하고 이 대리는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오히려 둘의 시간차 간극을 더 넓히고 있다.

한 번 쯤은 겪어봤을 이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게임이론으로 풀어볼 수 있다. 김 과장이 바라는 최고의 상황은 이 대리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자신은 멀티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이 대리도 또한 김 과장이 자신에게 집중해주고 자신은 멀티 플레이를 하길 바랄 것이다. 결국 서로가 자신에게 '집중'해 주기만을 각기 원할 것이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죄수 상호간 배신하면 둘 다 형을 받게 되는 것처럼 김 과장과 이 대리가 서로 상대방이 '딴 짓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심증적 추측을 하게 되면 둘 다 멀티 플레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대화에 집중하지도, 원하는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할 것이다.

일상적인 오프라인의 만남에서도 상대방이 산만해 보이면 대화에 집중하기 싫어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문자로만 대화하는 메신저의 경우 상대가 멀티 플레이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불투명한 상황이 몇 번 연출되면 신뢰를 주고받는 것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죄수의 딜레마의 핵심이 '눈앞의 이익을 쫓는 것만이 항상 유리한 것이 아니고 서로의 신뢰감으로 극복해 나갔을 때 최고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과장과 이 대리는 서로 간에 메신저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고 편리한 기능이라도 사용자가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없듯이, 메신저가 비즈니스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중을 통한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실제로 편리한 메신저의 기능을 업무 또는 비즈니스 기능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이상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재석 심플렉스인터넷 대표 column_j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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