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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공유의 천재 '소셜 마스터' 사도 바울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7]

[김익현기자] 유대 지역 종교였던 기독교가 인류 모두의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예수다. 33세 나이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이 청년을 ‘하나님의 아들’로 숭배하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 모두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가볍게 넘기기 힘든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예수의 복음을 유대 지역 너머로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죽기 전까지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바울이란 인물이다.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던 바울은 12년 동안 총 1만6천km 가까이 걸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 코너에 갑자기 왠 바울 얘기, 란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얘기하자. 바울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누구보다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했다.

물론 바울 당시엔 요즘 같은 통신 수단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활용해 메시지를 전파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허브’를 잘 공략할 줄 알았으며, 공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했던 뛰어난 ‘소셜 마스터’였다.

◆특수한 상황에서 보편적인 메시지 이끌어내

신약성서는 다시 27권의 소책자로 나눠진다. 이 중 21권이 편지 형식이다. 그런데 그 중 (저자 논란이 있는 일부 작품을 포함해) 14편을 바울이 썼다. 이 정도면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이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들은 대개 특정 교회에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다. 이를테면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어 교회,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이 대목에서 소셜 마스터 바울의 뛰어난 점이 엿보인다. 그는 수신 대상이 분명한 편지를 쓸 때에도 ‘보편적인 진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다음엔 그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도록 유도했다.

기원후 1세기 무렵 기독교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로마제국의 박해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다 내부 갈등까지 겪고 있던 초대교회 신도들에게 바울은 수시로 편지를 보내면서 위로하고 또 격려했다.

예를 들어보자. 신약성서 중 데살로니가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잘 조화된 모범적인 공동체라고 거듭 칭찬한다.

하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란 특정 교회만 겨냥하지 않았다. 그는 특정한 사실을 토대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데살로니아란 특정 교회 얘기를 하면서도 궁극적으론 바람직한 교회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 강조했다.

그 뿐 아니다. 바울은 '고객(독자) 맞춤형' 메시지에 누구보다 능했다. 자신의 편지를 읽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에 맞는 문체를 구사했다. 바울의 맞춤형 메시지 전달 전략에 대해선 존 폴락의 소설 ‘사도 바울’에 잘 나와 있다.

아래 인용문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구체적인 대상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참고로 존 폴락의 소설은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돼 있다.)

“데살로니아전서의 문체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쏟아냈던 외침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도처의 교양 있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서간문 형식의, 주의 깊게 다듬은 구절들을 활용하던 당시 식자층의 정교한 글과도 달랐다. 바울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 편지를 썼고, 그 문체가 바울다운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209쪽)

◆메시지 전파 땐 반드시 복제-배포 유도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유대 지방에 있는 다른 기독교인들의 힘든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두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달성했다. 즉 다른 지역 교회들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전해주는 한편, 현재 겪고 있는 것이 “나만의 고난”은 아니라는 위안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

바울은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가 좀 더 널리 전파되길 원했다. 예를 들어보자.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는 첫 번째 서한 끝 부분에 바울은 이런 말을 첨가해 놓고 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27절)

스탠디지는 바울의 소셜 미디어 활동에 대해 “당시 로마의 대표적인 저술가였던 키케로를 능가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 무렵 소셜 미디어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관점이 널리 전파되도록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독교 교회가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종교라는 메시지를 확고하게 했다. 이런 영향력 덕분에 당시 그가 썼던 편지가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이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복제되고 배포된 문서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Writing on the Wall, 47쪽)

바울 당시 도로와 편지는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콘텐츠나 다름 없다. 요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이용자들이 자신의 메시지가 널리 공유되길 바라는 것처럼 바울 역시 복사와 유통에 많은 신경을 썼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여러 교회들로 재배포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소셜 마스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허브 중심으로 메시지 전달

당시 바울은 소아시아(요즘의 중동, 동유럽 부근)의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했다. 안디옥을 비롯해 그가 다닌 많은 도시들은 당시 교통의 요충지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전형적인 ‘링크 허브’나 다름 없었다.

존 폴락의 소설 ‘사도 바울’에는 바울이 여행하던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일단 그 부분을 한번 읽어보자.

“바울과 그의 동행들은 다시 배를 타고 북서쪽으로 가서 소아시아 본토 밤빌리아 해안에 도착했다. 마침내 그들은 진정한 복음의 개척자로 나선 것이다. 밤빌리아는 바울이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숨겨진 시기에 가 봤음직한 지역들보다 서쪽으로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이나 그 너머에 이른 적이 없었다.” (92쪽)

“바울은 로마 길에서 이는 자욱한 먼지를 뒤집어쓰며 평원을 가로질러 갔다. 다음 날, 열기를 뿜어대는 회색 바위의 가파른 골짜기를 지나 산맥으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애초부터 전차와 수레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 도로는 U자형 커브 길로 만들지만 로마인들은 가파른 산길을 그냥 포장해버려, 나이가 많든 적든 보행자들은 땀을 비 오듯 쏟아야 했다.” (93쪽)

당시 도로는 요즘의 인터넷이나 다름 없었다. 모든 문명과 뉴스는 새롭게 닦인 도로를 타고 먼 곳까지 퍼졌다. ‘복음 전파’란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는 바울로선 망(도로)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야만 했다. 그가 선택한 전략은 바로 허브 공략이었다.

A. L. 바라바시는 지난 2003년 출간한 ‘링크’에서 바울의 이런 활동을 잘 묘사했다. 그는 특히 바울이 선교 활동을 통해 ‘링크 마스터’ 역할을 잘 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12년 동안 10,000마일 가까이 걸었다. 하지만 그가 무작위적으로 돌아다닌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당시의 가장 큰 공동체들에 도달하고자 했으며, 신앙이 싹터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을 접촉하려고 했다. 그는 신학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똑같이 사용할 줄 알았던, 기독교에 있어서 최초의 그리고 가장 뛰어난 세일즈맨이었던 것이다." (A. L 바라바시, "링크' 16쪽)

스탠디지 역시 바울의 허브 전략을 높이 평가했다. 역시 '담벼락에 글쓰기'에 나오는 바울의 허브 전략 얘기를 그대로 옮겨보자.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육지나 바다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링크를 구축할 수 있는 도시에 거점을 잡았다. 이를테면 고린도와 에베소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그는 한층 수월하게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Writing on the Wall, 44쪽)

바울. 그는 뛰어난 신학자이자 복음 전도자일 뿐 아니라 탁월한 소셜 미디어 전문가였다. 그가 활용한 뛰어난 소셜 미디어 전략은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밑거름이 됐다. 소셜 미디어 덕분에 그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는 전도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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