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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저신뢰사회의 코미디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절반이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은 이 달 초 여론조사 결과와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를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8%가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53.4%는 여론조사기관이 조사를 공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 조사를 여론조사에 맡기다니.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장이'라고 말한 크레타인의 역설이 생각나지만, 우리 사회의 불신풍조의 한 단면을 드러낸 정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혹시 여론조사에 대한 조사도 여론조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신뢰가 땅에 떨어진 세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김상훈 의원의 깊은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는 2년에 한 번 꼴로 '정직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흥사단의 '정직지수'는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 ‘나에게 도움이 되면 친구(동료)에게 거짓말을 한다’, ‘직장동료의 부정을 알고 모른척 한다’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직도를 산출한다고 한다.

며칠 전 발표된 올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직장인)의 정직지수는 60.2점, 청소년 정직지수는 77.3점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의 정직지수가 51.8점으로 가장 낮았다.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항목에 고등학생의 57%, 20대의 53%가 동의한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공공이나 민간 할 것없이 우리 사회의 신뢰도 저하에 대한 설문조사는 차고 넘친다. 굳이 여론조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온 바다.

지난 주 과학기술계에서는 '블라인드 채용' 문제가 화두였다. 국가보안시설에 해당하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박사급 연구원을 공개채용하는 과정에서 중국 국적의 응시자가 서류와 면접을 통과해 최종합격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에서 비롯된 논란은 곧바로 블라인드 채용 제도 전반으로 비화됐다.

해당 연구기관과 관련 부처는 이번 채용에 국적 제한은 없었으며 블라이드 채용제도와는 무관한 사항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고급전문인력 채용에서까지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한 정부의 지침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불만이 또다시 표출되는 계기가 됐다.

블라인드 채용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의 하나로 국민 대다수의 공분을 사 온 사회문제다. 또한 출신학교와 성별, 나이, 사진 등에 따른 편견과 차별에서 탈피해 능력과 자질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학벌중심주의와 지역차별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요소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해도 모든 분야에서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은 없다. 과학기술계는 주로 '특정전문분야에서는 출신학교와 지도교수가 채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제도 적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물론 정부는 현재의 가이드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목(논문, 특허 등 실적)만으로도 충분히 전문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신뢰의 문제다. 제도와 현실의 갭을 메꾸는 것은 신뢰없이는 불가능하다. 과학기술계가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율만을 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외적 사례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경미한 사항인지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중대한 사항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새롭게 도입된 제도를 취지에 맞게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추진과정에서의 예외적 케이스들을 당사자들이 자율과 책임, 신뢰 관계 위에서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도 역시나 책임회피와 문제덮기에 급급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어 아쉽다. 저신뢰사회를 극복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제도의 시행에서마저 책임지고 나서서 무언가를 해결하겠다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OECD가 2년 주기로 발표하는 '정부 신뢰도' 조사에서 올해 우리나라는 39%라는 신뢰도 점수를 받았다. 이것 역시 여론조사다. 이 수치는 OECD 36개 회원국 중 22위에 해당한다. 정부는 같은 조사에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여전히 OECD 평균(45%)에 못미치는 결과를 먼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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