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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3월3일-재키 조이너 커시


 

여자육상을 빛낸 불멸의 스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재키 조이너 커시 만큼 다양한 종목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선수는 드물다. 육상 명문가의 피를 이어받은 조이너 커시는 1962년 3월3일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오빠 알 조이너는 84년 LA 올림픽 3단뛰기 금메달리스트이고, 올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는 서울올림픽 3관왕의 주인공이다. 조이너 커시 역시 LA와 서울,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금메달 3개, 은메달1개, 동메달 2개를 따냈다.

조이너 커시의 주종목은 멀리뛰기와 7종경기다. 고교와 대학(UCLA)시절 육상과 농구를 병행했던 그는 LA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무려 6천520점을 얻어 미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정작 본선에선 단 5점차이로 금메달을 놓쳐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조이너 커시가 본격적인 7종경기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때는 86년 개인코치인 밥 커시와 결혼하면서부터다.

그해 모스코바에서 열린 굿윌게임에서 조이너 커시는 무려 7천148점을 얻어 7종경기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해가 바뀌기도 전에 또다시 기록(7천158점)을 갈아치웠다.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번상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87년에는 팬암게임에서 멀리뛰기 세계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같은 해 벌어진 세계선수권에선 멀리뛰기와 7종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며 올림픽급 대회에서 개인종목과 멀티종목 모두를 제패한 사상 첫 여자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AP통신은 그를 '올해의 여자선수'로 선정했다.

멀리뛰기와 7종경기에서 그를 넘볼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88년 서울에서 벌어진 24회 올림픽은 조이너가(家)를 위한 대회였다.

조이너 커시가 예상대로 금메달 2개를 거머 쥐었고, 그리피스 조이너는 100미터와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관중석에서 아내와 여동생을 응원하던 알이 가문의 경사에 펄쩍펄쩍 뛰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4년후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올림픽에서도 조이너 커시의 위력은 여전했다. 멀리뛰기에서는 동메달에 그쳤지만 7종경기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2개대회 연속 멀티종목 금메달의 금자탑을 세웠다.

또 남녀를 불문하고 멀티종목 선수 가운데 3개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따낸 최초의 선수로도 기록됐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철인' 조이너 커시도 막지는 못했다. 홈에서 펼쳐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는 부상으로 7종경기 참가를 포기해 4개 대회 연속 멀티종목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한 재활훈련 끝에 며칠 뒤 벌어진 멀리뛰기에선 동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6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애틀랜타 대회를 마친 뒤 잠시 농구로 외도를 하기도 했던 그는 5개 대회 연속 올림픽 메달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선발전에 출전했지만 멀리뛰기에서 6위에 그친 뒤 정든 트랙과 이별을 고했다.

조이너 커시는 그리피스 조이너와 달리 단 한번도 약물복용설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종목을 오랫동안 섭렵하면서도 '순결한 육체'를 유지한 점은 그가 세운 여러 기록보다도 빛나는 업적임에 틀임 없을 것이다.

현재 미국육상연맹(USATF) 이사로 재직중인 조이너 커시는 지난 2003년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을 보인 선수들을 영구제명조치하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김형태 기자 hors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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