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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한국 IT 산업도 B&O 같은 회사가 나와야 한다


[김석기의 IT 인사이트]

요즘 많이 사람들이 즐기는 자전거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자전거의 기원을 중국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기원전 2300년경 대나무로 만든 두 개의 바퀴가 달린 탈것으로 '행복한 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중국의 역사가 길다 보니 이런 주장들이 많이 나오는데 중국은 축구의 기원도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개념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탈것이 중국에 있었을 수 있겠지만 현대의 자전거와의 역사적인 연결성 등을 볼 때 '행복한 용'을 최초의 자전거라 보기는 어렵다. 유럽에서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전거 발명설'도 있다. 1961년부터 1970년 사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덱스 아틀란티스(Codex Atlantis)'를 복원하다 발견된 한 장의 설계도는 크기가 같은 바퀴 두 개가 체인으로 연결된 형태의 동력전달이 되도록 설계되어 현재의 자전거 구조와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

다빈치의 자전거 설계도 이후 300여년 후 최초의 자전거로 알려진 '셀레리 페르'가 역사에 등장한다. 프랑스 대혁명 다음해인 1790년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 이 최초의 자전거는 프랑스의 귀족인 꽁뜨 메데 드 시브락이 발명하였다. 현재의 자전거와 달리 아직 체인이나 페달 같은 동력장치가 없고 프레임에 바퀴 두 개가 고정되어 땅을 발로 차면서 타야 했다.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던 셀레리 페르를 여러 사람들이 따라 만들면서 자연스레 구조가 개선되었고 파리시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하였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자전거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퍼져나갔고 유럽을 중심으로 페달, 체인, 타이어 등이 발명되면서 현재의 자전거와 같은 형태가 생겨났다.

자전거는 유럽에서 시작해서 미국, 일본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한국의 경우 서재필 박사가 1896년 독립협회시절 미국에서 자전거를 들여와 독립문 신축현장에 타고 출퇴근 했다는 것이 자전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자전거가 등장한 초기에 사람들은 자전거를 '자행거(自行車)'라고 불렀다.

20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전거가 산업화하기 시작했다. 이태리의 캄파놀료, 비앙키, 던롭 등 유럽은 자전거 산업의 메카였다. 일본의 자전거 브랜드들도 일찍이 시작되었는데, 1912년에 선투어 브랜드로 유명한 마에다 제철이, 1921년에는 시마노 제철이 탄생했다. 일본 자전거 회사들은 2차 대전 전부터 군수품 업체로 바뀌어 한동안 자전거 생산을 못했으나 전후부터 다시 자전거를 생산하고, 1960년대부터 세계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럽 제품을 그대로 도입하여 생산하던 일본산 자전거들은 가격과 성능 면에서 우수한 품질로서 곧바로 자전거 시장을 석권하였다. 유럽에서 로드 싸이클을 중심으로 자전거가 발전했다면 미국은 싸이클 외에 산악자전거(MTB), BMX, 폴딩자전거 등을 발명하며 새로운 개념의 자전거 장르를 개척하였다.

현재 자전거 브랜드는 전세계에 걸쳐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거의 모든 자전거는 '시마노'에서 만든 부품을 쓰거나 '시마노' 규격과 호환되는 부품을 사용한다. 그래서 자전거 브랜드가 자이언트이건 트랙이건 상관없이 프레임 외에 나머지 핵심 구동부품들은 모두 시마노다. (시마노는 시마노라는 브랜드의 완성된 자전거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자전거에 들어가는 부품만을 공급한다.) 즉 시마노는 자신의 회사를 자전거 제조회사에서 자전거 플랫폼회사로 변신시킨 것이다.

현재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자전거 브랜드들 중 상당수는 대만 브랜드이다. 90년대까지만해도 대만은 자전거 생산 대국으로서 자전거의 브랜드와 생산이 모두 대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브랜드는 대만이지만 생산은 대부분 중국에서 하고 있다. 대만뿐 아니라 고가 자전거 브랜드가 많은 이태리 자전거 브랜드도 중국공장에서 생산한다. 전세계 자전거 생산의 90% 이상이 중국이다. 삼천리나 알톤 같은 한국 자전거 브랜드 역시 중국에서 생산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국내 브랜드의 중국산 자전거가 있을 뿐 국산 자전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전거와 같은 제조업뿐 아니라 IT 산업 쪽도 비슷한 상황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은 대만회사지만 생산은 중국 공장에서 한다. 폭스콘은 애플제품뿐 아니라 HP, 델,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수많은 IT 제품들을 OEM생산하고 있는 공장 중 가장 큰 업체이다. 폭스콘과 비슷한 업체로 컴팔일렉트로닉스, 위스트론 등 수많은 업체가 있으며 이들 모두 중국에서 IT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곳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업체들 역시 생산 기지의 중심을 중국으로 이동하였으며 국내에는 생산 조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자전거 산업과 IT 산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전거 산업의 현재를 설명하자면, 새로운 개념의 자전거의 개발은 주로 미국에서 이루어진다. 기존 제품을 개량한 신모델이 아니라 기존 제품과는 기능이나 용도, 디자인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자전거 장르이다. 미국에서 내놓은 새로운 자전거가 시장성이 있으면 유럽과 대만 브랜드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개별 자전거 제품을 디자인하고, 일본의 시마노는 부품단위의 개선이나 개발을 주도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생산한다. 자전거 산업은 완전히 국제분업화 되어있다. 한국 자전거 브랜드들은 여기서 대만 자전거 브랜드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브랜드 경쟁력에서 비교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

IT 산업과 비교하면 유사한 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IT 제품의 원형 개발은 대부분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다.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 제품들을 기반으로 응용하여 개별제품을 만드는 곳은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이며 역시 생산은 중국에서 한다. 차이가 있다면 자전거 산업의 플랫폼은 일본의 시마노가 독점한 반면 IT 산업은 인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들이 장악했다는 부분만 다르다.

자전거 산업에서 일본 시마노와 미국의 스람 (시마노와 스람은 규격이 동일), 이태리의 캄파놀료 같은 플랫폼 회사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이들 플랫폼 위에서 브랜드와 디자인에 대한 경쟁력만 존재할 뿐 성능이나 기능에서의 차별화를 이루어 내기는 쉽지 않다. 모든 회사가 이 세 회사의 구동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PC중심이었던 IT 산업은 자전거산업처럼 인텔에서 새로운 CPU를 개발하면 이 규격에 맞추어 대만의 보드회사들이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을 개발하고, 한국이나 일본회사들은 완성품을 개발하여 중국에서 생산했다. 하지만 모바일이 본격화 되면서 이러한 공식들이 깨지기 시작하였다. 인텔 역시 모바일에서는 퀄컴에 밀린 여러 AP제조사 중 하나일 뿐이다. 모바일에서 다시 웨어러블/IoT로 넘어가면서 IT 산업의 다각화는 더욱 심해졌고 이제 자전거 산업과 같은 국제분업화는 요원해졌다. 자전거 산업과 달리 IT 산업에서는 중국 회사들이 OEM 생산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샤오미, ZTE, 화웨이, 하이얼, 레노보 등 자체 브랜드로서의 경쟁뿐 아니라 ODM 생산으로 오히려 중국에서 개발된 제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개발 제품들은 뭔가 조악한 디자인에 싸구려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었고 실제로 가격도 저렴하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중국 IT 제품들의 품질을 보면 디자인과 품질이 놀랄 만치 향상된데다가 그럼에도 아직 가격이 싸다. 특히 샤오미의 약진은 경이로울 정도다.

과거 PC 산업을 돌이켜 보면 인텔이 CPU와 칩셋 등의 규격과 플랫폼을 제공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와 오피스를 제공하면 HP나 델, 소니, 삼성과 같은 제조사들이 개별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하였다. 한때는 HP가 시장을 석권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소니의 바이오가 가장 많이 파는 제품이었듯이 제조사는 계속 바뀐다.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사실 누가 PC시장에서 1등을 하던 별 상관이 없다.

현재 스마트폰과 패드 등의 모바일 시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플이야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하고 있으니 별개로 치지만,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제공하는 구글의 입장에서 삼성이 1등을 하던 LG나 소니가 1등을 하던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중국의 샤오미나 ZTE가 1등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 업체의 약진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근래 중국제품들이 향상된 점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제품의 마감 퀄리티가 나무랄데 없이 높아진 점이다. 성능부분은 국내 브랜드 제품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기능면에서는 오히려 국내 제품에는 없는 기능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낮아 가격대 성능비로는 국내 브랜드 제품을 능가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평준화되고 있는 성능이나 기능이 아니라 제품의 오리지널리티와 이를 결정하는 디자인, 제품의 만듬세 등이 국내 브랜드의 성장세보다 빠르게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국내 브랜드 제품의 수준을 따라 잡을 것이다.

한국 브랜드의 제품이 중국 제품 대비 우위를 갖추고 있는 부분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디자인이고 또 하나는 브랜드 경쟁력이다. 애플제품을 보면 이 두 가지 부분이 상호작용을 통해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점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샤오미뿐 아니라 하이얼이 내놓겠다고 발표한 R2D2 냉장고를 보면 제품 기획력이 일정부분에서 한국 브랜드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한국 IT 업체들이 가야 할 방향은 중국과의 가격 경쟁이 아니라 고급화 되고 특화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가전에서 보자면 B&O는 세계 최고의 성능이나 최대 시장 점유율보다는 고유의 제품 철학을 바탕으로 유니크한 스타일과 디자인으로 브랜딩하여 독자적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제 한국 IT 업계에서도 B&O같은 회사가 나와야 한다. 고유의 철학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구축한 IT 회사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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