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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정부는 조선일보 사설을 주목하라


지금 속절없이 새는 곳이 어디 IT 분야뿐이겠는가. 30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세계 경제가 휘청대는 마당에 어찌 또 IT만 특별히 편애할 수 있는 노릇이겠는가. 자원은 제한 돼 있고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서로 자기 분야 산업 활성화만 요구한다면 그것 또한 ‘산업 이기주의’라 할 만 하지 않겠는가.

과거 배경이 무시된다면 이런 생각은 아주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뜯어본다면 이런 생각은 지나친 일반론에 빠져 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최근 부쩍 늘어난 IT 산업 위기론은 신자유주의 붕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오히려 한국만의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 기인한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부 구조개편에서 가장 박대를 당한 분야가 IT와 과학기술이지 않은가. 이전 정부에서 과학기술 분야는 총리급 부처가 관장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는 차관급 조직으로 강등돼 교육 분야에 편입됐다. 스스로 자부하고 해외에서도 인정한 ‘IT 강국’을 건설한 주문부처 정보통신부는 지식산업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찢겨졌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는 또 어땠는가. IT 분야 정책이라는 게 워낙 전문성을 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주먹구구식으로 발표된 정책 때문에 혼란을 준 게 어디 한두 가지였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로 촉발된 ‘촛불정국’을 거쳐가면서 인터넷에 대한 느닷없는 규제와 통제는 또 얼마나 많은 반발을 사고 있는가.

그 결과는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이 뻔하지 않겠는가.

국제 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발표한 ‘2008년 IT 산업 경쟁지수’는 그래서 새삼스럽게 충격이랄 것도 없다.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작년 3위에서 올해 8위로 5계단 미끄러졌다. IT에 관한 한 세계가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삼는다는 ‘IT 강국’은 쇠망해 옛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수치화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이미 이 정부 출범 전 인수위 시절부터 예고됐었다.

이 정부는 ‘예측 가능한 실패’를 택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가 더 주목되는 것은 평가 항목 때문이다. 평가된 항목은 △기술의 풍부한 공급 △혁신 친화적인 환경 △세계적 수준의 기술 인프라 △관련법 정비 △균형 있는 정부의 지원 △경쟁 친화적인 기업 환경 등이었다. 여러 부분에서 정부 역할을 중요한 판단근거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참혹한 결과의 정부 책임이 적잖다.

그러니 ‘IT 강국’을 부러워했던 외국인마저 의아해 할 일이다. 잘 하고 있는 일은 더 키우고 독려하는 게 당연지사인데 왜 한국 정부는 거꾸로 가려고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할 법도 하다. 설마 산업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누가 봐도 이건 아니지 않겠는가.

EIU 결과가 발표되자 그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컸다. 신문마다 대서특필하고 사설까지 동원해 크게 걱정하였다. 자유선진당 같은 경우 “토건국가 지향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비극”이라고 노골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정부에 비교적 우호적인 조선일보의 22일자 사설도 주목된다. 이 정부는 사심없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썼다. “대한민국 경제는 아직 IT산업을 대신할 미래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造船)이 있다고 하지만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들의 맹렬한 추격으로 기술·품질 우위(優位)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T산업까지 밀린다면 우리는 세계 경제 전쟁터에서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가 싸워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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