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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북]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


한 젊은 여성의 애완견이 지하철에서 똥을 쌌다. 다른 승객들이 그 여성에게 똥을 치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말라며 무시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누군가 그 여성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개똥녀'로 명명된 그 여성은 사이버공간에서 무차별 테러를 당했다.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

실제로 '개똥녀' 사건은 인터넷 세상의 루머와 익명성이 몰고오는 피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 여성은 자신의 행위에 비해 과도한 '응징'을 당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개똥녀 사건을 통해 사이버 공간의 무분별한 루머와 평판 시스템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나타낸다.

그녀는 잊혀지지 않는다. 모두 인터넷 덕분이다. 그녀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전자기록으로 영원히 보존되므로 애완견의 똥을 치우지 않은 여자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녀는 결코 ‘개똥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차 없는 구글 메모리에 영구히 복사되어 건방지고 생각 없는 여자로 남는 셈이다. 개똥녀의 행동은 확실히 잘못 되었지만 그녀를 적절히 판단할 만한 전후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저지른 사회적 일탈의 결과가 절대 지워지지 않을 디지털전과기록으로 남아야 할까? (13쪽)

이처럼 익명의 섬에서 쏟아내는 무차별적인 사이버 폭력에 대한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한 사람의 평판이 형성되어버릴 때에는 자칫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법학교수인 저자는 인터넷상의 각종 루머와 가십, 여론재판과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문화사회학적, 법제도학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터넷이 아직은 미숙한 10대 같은 존재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한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개똥녀' 이야기로 이야기의 문을 연 이 책에는 인터넷 공간의 루머와 가십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연인과의 은밀한 사생활을 블로그에 공개했다가 연인에게 고소당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인터넷에 상사의 험담을 올렸다가 해고당한 직장인의 얘기도 나온다.

또 교도소에 다녀온 전력이 구글 검색으로 드러나 면접 전형에서 탈락한 구직지원자, 재미 삼아 찍은 동영상이 유출되어 원치 않은 유명세를 치른 고등학생 등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 계속 발생함직한 이야기들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둘러싼 최근의 사회문화현상의 명암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뭘까? 예전이라면 그냥 주변 사람들 몇 명만 알았을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전국 단위로 퍼져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주장은 인터넷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 성격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것은 직장 내 가십과는 다르다. 명백히 가십을 널리, 영속적으로 만들어 누군가의 평판에 해를 끼치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노출이다. 가십이 인터넷으로 퍼지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블로그에 게재되었다 해도 정보는 관련 인물의 이름으로 구글 검색하면 나온다. 그러므로 이미 그 가십이 한 특정한 사회집단에서 구전으로 회자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온라인 정보의 게시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봐야 한다. (362쪽)

저자는 이 책에서 인터넷 공간의 루머와 가십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하긴 지금 상태에서 인터넷 공간의 각종 문제들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저자의 주장처럼 '문제들은 아주 복잡하며 쉬운 답은 없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기술이 다시 다른 문제를 제기'(409쪽)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제가 그렇듯이, 이제 막 청소년기에 다다른 인터넷 문제 역시 해결난망의 과제들이 즐비해 있다.

따라서 저자는 해결사를 자처하는 대신, 풍부한 사례를 통해 흥미로우면서도 풀기 어려문 질문들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명제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을 원만하게 해결할 합의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인터넷 공간의 바람직한 평판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취하는 책이라고 보면 크게 그르지 않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노력하면 프라이버시를 지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다소 뻔한 주장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리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그냥 방치해 두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업시대적인 마인드로 '중앙에서 통제하려는 시도'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니엘 솔로브 지음/이승훈 옮김, 비즈니스맵 2만원)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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