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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통신 시장의 '나쁜' 시나리오


지금 통신 시장의 두 키워드는 ‘합병’과 ‘융합’이다. 이 두 단어는 ‘격동’과 ‘확대’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요동치며 성장하는 모양새다. 합병은 둘 이상의 기업을 하나로 합쳐 키우는 방식이다. 융합은 둘 이상의 서비스를 하나로 결합해 키우는 형식이다. 기회가 왔다는 뜻이고,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개인은 통신요금을 줄일 수 있다는 데, 기업은 시장을 활성화 한다는 데 기대를 거는 듯하다.

정부 정책도 이런 기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기대에 초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합병’과 ‘융합’은 시장이 확대될 때 긍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장이 정체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일 때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집중을 통한 ‘구조조정’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격동과 확대’는 ‘안정과 축소’로 대체된다.

그런 상황에서 연쇄 합병은 불가피해 보인다. 선두주자는 KT 그룹이다. 유선 중심의 KT는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무선분야의 KTF 합병을 강력한 돌파구로 여기고 있다. 두 가지 이점 때문이다. 그룹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시장의 대세인 무선분야를 본대(KT)가 직접 관장함으로써 결합 상품 구성 등의 전략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합병을 통한 KT의 공세에 SKT가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은 단 한 가지뿐이다. 역시 합병이다. 상대는 덩치를 키우면서 속도까지 확보했다. 그런 상황에 굳이 전력을 분산시켜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분산된 곳마다 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KT의 자회사 합병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KT나 SKT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힘이 약한 LG 통신 3사 또한 살려 한다면 합병을 숙명처럼 강요받게 된다.

결과는 무엇인가. 최소 7개이던 회사가 더 커진 3개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격동’은 거의 없다. 집안끼리 합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확대’도 없다. 시장은 정체되거나 축소된 형태로 안정된다. 비유하자면 4대4대2의 안정된 이등변삼각형의 구도가 완성된다. 그럴 경우 싸움은 잦아들고 투자는 축소된다. 그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들 간에는 암묵적 담합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된 구조는 3개 본대(本隊) 입장에서 중복 투자 등 낭비를 줄이고 조직을 효율화하는 이점이 있지만, 사회 총체적으로 볼 때는 두 가지 슬픈 결과를 낳는다. 먼저 관련 생태계의 위축이다. 이런 구조는 인력 구조조정과 중복 투자 및 비용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관련 생태계에 직격탄일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또 신규 사업자(새로운 투자자)의 진출 의욕을 꺾는 원인도 된다.

시장의 구조가 이런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은 탁상공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없다. 정부의 온갖 신규사업자 유인 정책이 관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진출 생각이 있는 사업자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판알 튕기는 것뿐이다. 싸워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전쟁을 시작할 무모한 기업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기존 사업자에 대한 투자 압박이 거세다. 정부가 힘으로 찍어 누른다. 그러나 이 또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오히려 훗날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정부 강압에 굴복해 투자 여력을 원치 않는 곳에 소진했을 경우 정작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줌이 식어 언 발을 더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형국이 되는 것.

상상만 해도 춥다. 이 ‘나쁜’ 시나리오가 오산이기만을 빈다.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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