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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검찰·법원 '드라마'에 다음이 '조연?'


미네르바가 구속됐다. 법원은 미네르바에 대해 10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과 검찰은 '미네르바 사건'으로 우리에게 한편의 '사이버모욕죄'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게 해 줬다.

검찰이 '주연'이었고 법원과 인터넷사업자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조연' 역할을 함으로써 '사이버모욕죄' 드라마는 완성했다. 지켜보는 네티즌들로서는 섬뜩한 공포감을 느꼈다.

인터넷 여론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이제는 보호해 주는 곳 조차 아무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닫게 됐다.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온다.

다음측은 '검찰이 미네르바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느냐' '검찰에 미네르바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제공했느냐'는 질문에 "현행법상 (검찰이) 자료를 요청했는지, 우리가 관련 자료를 제공했는지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이다.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측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영장 없이도 검찰이 자료를 요청하면 제출하게 돼 있다"고 말해 미네르바와 관련된 정보 제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네르바는 다음의 토론광장인 '아고라'를 통해 현 경제상황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관심을 모은 '인터넷 논객'이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여기서 미네르바의 탁월한 식견을 애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미네르바 체포 과정이 앞으로 다가올 '사이버 모욕죄'의 미래를 체험하는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사이버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검찰 등 수사기관이 허위사실 또는 명예훼손죄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수사,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여권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법안중 하나다.

미네르바는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었고 피해 규모나 사실이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체포됐고 '허위사실유포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에 이르렀다. 검찰에 체포돼 진짜 미네르바가 맞는지 '2009년 한국 경기전망'이라는 시험(?)까지 보는 코메디를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포털사업자 다음이 의도하지 않은 '조연 역할'로 자리잡아 네티즌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준다. 미네르바의 주 활동무대였던 다음이 미네르바를 체포하는데 단서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네티즌들의 두려움이 크다.

토론광장은 누구나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표현의 자유'가 생명이며 개인의 정보는 철저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다음의 미네르바 자료제출 의혹은 이 원칙을 크게 훼손했다.

아고라에서 그동안 활발한 토론을 펼쳤던 또 다른 '인터넷 논객'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자신도 '제2의 미네르바'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제 "아고라를 떠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미네르바 조차 걸림돌없이 개인정보가 넘겨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보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될 것이란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인터넷기업이 권력의 핵심인 검찰의 자료요청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또 자료를 제출할 수 밖에 없도록 옭아맨 법조항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의 자료요청에 맞설 수 있는 합리적 거부 논리는 없지 않았다. 혐의가 구체화되지 않는 이용자에 대해 '알아서 기는 것'보다는 법원의 영장발부 여부를 기다려 볼 수 있었다.

상식과 합리적 절차로 검찰의 요청에 거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쉽게 제출했다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클 수 밖에 없다.

인터넷업체가 검찰에 자료를 제출할 수 밖에 없는 법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에 있다.

제54조 3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영장 없이도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를 검찰에 제출할 수 있다.

다음이 검찰의 요청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고 피해가 구체화되지 않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또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가 검찰의 요청에 무조건 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혐의가 불명확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인터넷사업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분을 내거는 '용기있는 행동'을 네티즌들은 기대했을 것이다.

사이버모욕죄가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사업자가 검찰에 자료가 쉽게 넘겨주는 마당에 입법이 되고 시행된다면 그 결과는 추측하지 않더라도 '땅짚고 헤엄치기'이다.

다음이 '용기있는 거부'를 했다면 검찰은 다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 미네르바에 대한 체포에서 다음은 '조연' 역할에서 빠질 수 있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면 다음으로서는 개인정보를 제출할 수 밖에 없다. 법원의 영장은 사법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체포와 관련된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더라도 다음으로서는 검찰에 응하지 않은 명분을 얻게 된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든, 그렇지 않든 다음으로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법적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은 이런 '용기있는 절차'를 포기했다. 네티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번 미네르바에 대해 검찰이 내건 '허위사실유포죄'는 위헌소지가 많은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검찰이 자료제출을 요청했고 다음이 응했다면 다음은 미네르바 체포의 '조연' 역할을 한 셈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허위사실유포죄'는 위헌 소지가 큰 악법조항이다. 피해자도 없는 글을 정부 눈에 가시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도구로 남용되고 있다. 당장 적용을 중단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네티즌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정보를 나눈다. 그런 장터에 자유가 없고 개인정보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네티즌들이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

다음의 미네르바 개인정보 제출, 검찰의 미네르바 체포,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등 일련의 과정은 네티즌들에게 불안과 함께 '사이버모욕죄'가 도입됐을 때의 악몽을 떠 올리게 한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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