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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미네르바 현상'과 정부의 자충수


검찰에 의해 ‘미네르바’로 지목된 사람이 구속됐다. 그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서른 한 살의 전문대 출신 무직자’다. 미네르바는 ‘증권회사와 해외 경험이 있는 50대’로 알려졌었다. 이 때문에 ‘미네르바 진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진위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 건 ‘미네르바 현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중요한 건 ‘미네르바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미네르바 현상’의 사회적 의미다.

검찰은 그를 체포한 뒤 이례적으로 신속히 신상명세를 밝혔다. 의도는 뻔하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던 사람의 권위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언론이 그의 신상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 자의 허황된 헛소리’에 농락당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이런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저명성은 이런 토대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미네르바의 저명성은 ‘지혜’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접근을 고민케 한다. 이를테면 지혜는 지식의 총량과 비례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또 기존 오프라인 제도와 질서에 의해 주어지는 권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미네르바는 그걸 글로 증명해보였다. 따라서 ‘미네르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 힘의 원천과 의미를 밝히는 일과 같다.

사실 미네르바보다 경제학적으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제도권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이 그들보다 미네르바의 경제 예측을 더 신뢰했던 이유는 뭘까. 단지 쉬운 구어체의 글투와 신랄한 독설 때문일까. 그렇게만 본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인터넷 공간에 그런 사람은 지금도 수두룩하다. 허나 그들 모두 미네르바가 된 건 아니다. 미네르바의 힘의 원천은 다른 데 있다.

미네르바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그의 경제 예측이 상당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부와 제도권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서른 한 살의 비전문가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정부와 제도권 전문가는 왜 예측하지 못하였냐는 점이다.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진실로 몰랐거나 알고는 있었지만 여하의 이유 때문에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전자는 논할 가치도 없다. 중요한 건 후자다. 후자는 진실을 의도적으로 가린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감춰야 할 이유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사적 이득을 진실보다 중요하게 여기거나, 진실을 가리는 게 공익을 위해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는 두 경우를 고민할 까닭이 없었다. 사심을 부릴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스스로 학습한 바대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과감하게 말했을 뿐이다.

결국 ‘미네르바 현상’은 지식의 부피가 작더라도 사심과 사익을 배제한 통찰력이 온갖 지식과 숫자로 무장한 경제이론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게 미네르바 현상이 우리 사회에 던진 핵심적인 의미라 보는 게 옳다. 그 현상을 이해하는 데 미네르바라는 존재가 오프라인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누구이든 ‘미네르바 현상’의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곳에도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한 어느 정도 질서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네르바를 구속한 이유도 그런 의미이겠다. 정부는 그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만들어 유포하였다고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중에게 그의 구속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득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서른한 살 온순한 성격의 청년이 오로지 글로써 해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허약한 공익이라는 게 대체 뭘까. 잘 모르겠다. 또 정체 모를 그 공익을 해함으로써 그에게 돌아가는 사익은 또 뭘까. 이 또한 잘 모르겠다. 그가 그 유명한 북으로부터 지령 받은 공산주의 혁명가라면 그동안의 우리 사회 수준으로 보아 어느 정도 아귀는 맞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그의 사심과 배치되는 공익은 무엇일까.

그래서 '미네르바 현상'의 쟁점은, 그가 누구인지의 여부도, 그가 실정법을 위반했는지의 여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가 익명의 공간에서 설치는 일’을, 의미 있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오프라인 제도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나쁜 일로 여겨 막을 것인가를 놓고 기득권자와 대중이 대립하는 게 핵심 쟁점이다. 그리고 그 쟁점의 정점은 '사이버모욕죄' 신설에 관한 대립이다.

'사이버모욕죄'를 만드려는 정부 여당은 '미네르바 사건'을 놓고 오판을 했을 수도 있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이버모욕죄' 추진을 강행하려 할 터인데, 생각과 달리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네르바가 개입된 구도는 기득권자와 대중의 대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좋을 게 없다. 뱀 꼬리인 줄 알고 잡았으나 용을 불러내는 형국과도 같다. 이름하여, 자충수다.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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