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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강씨…인터넷 쟁점은?


살인범 강씨와 인터넷!

지금 대한민국은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으로 들썩이고 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특별한 원한이나 감정도 없이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척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우리로서는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위로해 주는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당신들의 고통을 안다' 해도 그들의 피맺힌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몇가지 사회적 논쟁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분노와 충격'으로만 받아들여서는 객관적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범 강씨와 인터넷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

경찰은 군포여대생이 실종된 이후 수사의 한 방법으로 인터넷 포털업체를 겨냥했다. 범인이 인터넷을 통해 언론보도와 경찰의 수사진행 상황 등을 검색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국내 포털을 통해 '군포' '여대생' 등 특정 키워드로 검색한 네티즌들의 개인정보가 경찰에 제공됐다.

경찰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네티즌들, 국민들의 생각은 두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강력하고도 흉악한 범죄자에 대한 신속한 검거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둘째, 특정 단어로 검색한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생각과 논쟁을 이어가야 한다. '분노'로 달아올랐다가 수그러져 버리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경찰의 이번 조치가 선례로 남게 된다면 앞으로 수많은 비슷한 사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적인 현실을 살피는 일이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포털에 의뢰하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전체 사회 질서를 위해서는 개인의 불편함과 희생은 법적으로 규제받을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불이 나거나, 사람이 크게 다쳤을 때 소방차와 응급차가 신속히 움직일 수 있도록 일반 차량이 길을 비켜주는 것은 상식이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가 만든 하나의 약속이다.

그러나 압수수색 영장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의 개인정보 요청에 포털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제출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찰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입맛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내 사생활이 고스란히 표출되는 '노출 사회'에 살고 있다. 잠깐 들춰보면 쉽게 이해된다.

아침에 출근이나 학교에 갈 때 당신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교통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당신이 어디서 탔고 어디에서 내렸는지, 그리고 어떤 교통수단으로 환승했는지 여부가 다 담겨 있다.

지하철에 내려 회사나 학교에까지 걸어서 당신은 이동한다. 당신의 모습은 곳곳에 설치돼 있는 CCTV(폐쇄회로)에 포착된다. 집에서 나와 직장이든 학교든 도착하기 까지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영상 기록으로 저장된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는 당신, 당신의 IP는 곧바로 당신이 접속하는 포털 등에 데이터로 저장된다. 당신이 컴퓨터를 켜고 어떤 사이트를 검색하고 어떤 뉴스를 보고 어떤 단어로 검색했는지 해당 사이트는 다 알고 있다.

퇴근후 당신은 저녁 회식자리든, 친구와 만남이 있든 술집과 찻집에서 술과 차를 마신다. 즐거운 이야기와 거나한 술자리가 끝난 뒤 당신은 기분 좋아 '내가 계산하겠다'며 신용카드를 꺼낸다. 신용카드의 마크네틱선이 주르르 긁히는 순간 카드업체 전산망에 당신이 몇월 며칠에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노출된다.

집으로 가는 길, 친구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가족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순간 이동통신업체의 서버로 당신의 통화내역은 물론, 통화시각, 통화지역까지 제공된다. 다시 당신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간다. 거꾸로 집으로 거슬러 가는 동안, 아침에 일어났던 출근길의 모습이 재현된다.

이쯤되면 개인 사생활 자체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기본적 권리는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있다.

우리는 수많은 개인정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의든, 타의든 사회 곳곳의 업체나 기관에 이미 제공하고 있다. 다만 그 저장된 정보를 그 누구도 그 어떤 합당한 이유없이 들춰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을 기본으로 우리는 신체, 표현, 개인 사생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경찰이 살인범 강씨 검거를 위해 영장없이 네티즌들의 개인정보를 포털로부터 제출받았다면 그 누구도 합당한 이유없이 들춰보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깨진 것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부르르 끓어 올랐다 사라지는 '냄비'가 되면 곤란하다. 지금부터 이번 강모씨 사건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고 경찰이 강씨의 경우처럼 수사방법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합리적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의 공분, 분노만을 자극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경찰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입맛을 채우는 일처리는 불합리하고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국민적 토론과 냉정한 시각을 바탕으로, 강력범죄 등 심각한 사회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개인의 희생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법적 뒷받침과 사회적 비용은 어느정도 들 것인지, 여러 가지 논의와 합의를 이뤄나가야 할 때이다.

강씨 개인정보 공개와 2차 사이버테러

살인범 강씨가 검거된 이후 모든 언론들은 자극적 제목과 사건의 충격에 집중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 …"

그동안 법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피의자 얼굴모습이 공개되지 않는 부분도 '국민적 분노'앞에서 깨졌다.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강씨의 얼굴을 내보내면서 직접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강씨 얼굴공개에 앞장선 일부 언론은 "찬반론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끝에 강**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키로 했다. 강이 범행을 자백하고, 증거도 명백해 공익을 위해서라도 실명과 얼굴 공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했다.

이어 방송사들도 뒤따라 강씨의 실명은 물론, 고향과 강씨 삶의 일대기, 살아온 과정...나아가 얼굴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강씨의 모든 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들춰진 것이다.

이후 나타난 우리사회의 모습은?

강씨의 동명이인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강씨의 실명으로 검색한 뒤 해당 홈피에 들어가 방명록에 '살인마' '죽일 X' 등 무차별적 집단 테러를 가하고 있다. 강**라는 실명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존재해서는 안될 X"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졸지에 같은 이름을 갖고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다.

강씨의 가족들은 대한민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됐다. 그의 형은 최근 인터뷰에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떠돌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들 세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들은 강씨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이제 영원히 '살인범의 자식'이란 사회적 린치(개인에 의한 사적 형벌)에 의해 2차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또한 '국민적 분노' 만을 앞세운 원칙과 법적 고찰없이 언론사들이 앞장서 나간 측면이 크다. 우리나라 헌법은 법원의 판결이 나기 이전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피의자의 개인정보는 노출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현행 법테두리에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적 분노'에만 기대 사태를 해결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인터넷은 강씨의 실명 공개이후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전파속도가 무섭도록 빠르다.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2차 피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피의자 신분에 있는 범죄자의 얼굴공개가 필요하다면 국민적 합의와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쳐 합당한 절차와 요건을 만들어야 한다.

경찰은 현재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한 법률(가칭)' 제정을 추진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관련 법률을 추진하는 배경의 이유로 "현행 법률상 피의자를 구분해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피의자 얼굴공개에 대한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기준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적 분노 등을 앞세워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언론은 사회적 합의, 법적 절차를 우선시해야 된다는 상식을 너무 앞섰다.

어느정도의 범죄자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공개돼야 하는지, 또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논의부터 했어야 했다. 그런 논의와 절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쉬운 대목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법적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엄격한 기준 마련을 위해 필수적이다. 또 다른 희생자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국민적 분노'를 통해 여론몰이와 집단 무의식으로 사회 범죄자에 대한 처단이 이뤄진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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