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균성] 실명제 실패 경험담


포털 사이트 다음에 중학교 동창 카페가 있다. 여러 코너로 구성됐는데 그중에서도 옛날 사진을 모아놓은 코너가 인기였다. 추억의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삶, 자신의 생각, 옛 추억을 솔직하게 말하는 코너도 인기였다. 그 덕인지 동창들 사이에 카페에 대한 입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동창 280여명 가운데 180여명이 가입했다. 카페는 늘 활기에 찼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실명제 이후다. 운영진이 두 차례 바뀌고 새 운영진이 들어서면서 카페가 실명제로 전환됐다. 유예기간을 둔 뒤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사람은 글쓰기 자격을 없애버렸다. 실명제 논란은 전체 인터넷 세상을 떠들썩하게도 했지만 작은 카페 안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실명제를 추진한 운영진의 생각은 대충 세 가지였다. 닉네임을 쓰니까 글 쓴 사람이 누군지 몰라 헷갈린다는 점과 다소 무례한 글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남녀 동창 간에 연애인지 희롱인지 모를 불상사가 한두 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세 가지 점 때문에 카페 오기를 꺼려하는 동창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명제를 하면 더 많은 동창이 편안하게 카페에서 놀 수 있다는 말.

그런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실명제 전환의 목적은 더 많은 동창이 카페를 찾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진 생각과 달리 실명제는 더 많은 동창을 카페에서 몰아냈을 뿐이다. 강제퇴장을 시켰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명제 이후 활동하는 사람이 급격히 줄고, 콘텐츠가 빈약해지자, 더 이상 카페에 들러야 할 이유가 사라졌고, 방문자가 푹 줄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요즘 카페 실상을 보면 참 가관이다. 참가자는 모두 공자님이거나 예수님이거나 부처님인 듯하다. 점잖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 일색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친구들 안녕, 나도 안녕, 경제는 어렵지만 모두 힘내자.” “친구들아 너희가 있어 난 행복하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살자.”

더 웃긴 건 카페가 썰렁해지자 머리 쓴다고 만들어낸 ‘출석부’란 코너다. 정확한 코너 이름은 비밀로 한다. 한두 줄로 자신이 왔다간 흔적을 남기게 하는 곳이다. 출석을 체크한다는 발상 자체부터 웃긴다. 그나마 ‘출석 도장 찍는’ 사람은 점잖은 간부나 운영진뿐이라는 점에서는 차라리 안쓰럽다. 그들도 그런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지 “요즘 왜 이리 카페가 썰렁하지, 아~ 추워”라는 글도 간혹 보인다.

카페 여러 코너 가운데 콘텐츠가 매일 업데이트 되는 곳은 그나마 ‘출석부’다. 위의 공자님 말씀들이 쓰여 지는 곳이 바로 거기다. 그러니 무슨 재미로 카페에 들락거릴 것인가. ‘듣기 좋은 공자님 말씀도 한두 번’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딱 그 꼴이다. 회원들 생각은 아마 이런 것일 게다. “공자님들끼리 노세요.”

카페 실명제가 회원들을 밀어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딱 하나라고 본다.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것이다. 왜 재미가 없는가. 실명으로 인해 카페 활동이 지나치게 관리되기 때문 아닐까. 그런 환경에서 인간의 발언은 가식적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예를 들어 “친구들아 너희가 있어 난 행복하다.”라는 멘트처럼. 그걸 누가 모르나. 문제는 하구한날 염불처럼 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멘트가 진실이 아니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동창들이 카페에 모이는 이유는 공자님이나 예수님 교육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이 카페에 기대한 것은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른 친구 생각도 들어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부부 싸움이나 아이와의 갈등문제 같은. 그러면서 서로를 느끼고, 산다는 게 다 비슷하다는 연대감을 경험하며.

그런데 이름 딱 까발려놓으면 그런 말이 나올까. 현실에서도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만 그것도 잔뜩 술 퍼먹고 할 그런 말들. 과거에는 그런 글이 심심찮게 있었고, 그럴 때 놀리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그랬었다. 말이란 게 한 번 터지면 왕성해지는 법 아닌가. 그 재미에 ‘카페질’에 빠진 친구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과하게 말하면 카페 실명제는 친구들에게 그 터를 빼앗은 것과 같다. 대신 공자님 흉내내는 몇몇 분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실명제가 확산되면 인터넷 공간이 전부 그렇게 될까봐 괜히 걱정이다.

/gslee@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균성] 실명제 실패 경험담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