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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민증' 까고 까불기…'어.렵.다.'


어느날 상사가 팀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어려운 일을 기탄없이 듣는 자리입니다. 나를 욕해도 좋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좋으니, 허심탄회한 이야기 합시다. 오늘 하는 말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자! 이 대리부터 시작하지! 고도리순으로…"

졸지에 첫 주자로 찍힌 이 대리는 안절부절, 몸둘 바를 모르고 얼렁뚱땅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넘어간다. 이어 고도리순이든, 역방향이든 순서대로 한마디씩 의무적으로 해야 만 하는 팀원들!

어느날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자리. 이 나라를 이끄시는 장관급의 높으신 분들이 모두 모였다.

한 국무위원이 대뜸 "각하! 대선때 약속하셨던 재산 헌납을 이제는 실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무쌍한 위원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날 국무회의 자리는 남극의 팽귄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얼음장 같은 순간이 됐으리라. 해당 국무위원은 최고 권력자에게 확실하게 '찍힌' 것은 물론이다.

세계적 인터넷기업인 구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4월1일부터 이용자 10만명 이상 사이트에 강제한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한다고 오늘 분명히 했다. 이 사건으로 사이버공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명확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 골자이다.

그런데 구글이 '못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하고 나면 인터넷의 고유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위축돼 인터넷 본연의 모습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글은 "비즈니스보다 이용자 가치가 더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앞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책임감 있게 하세요"라는 요구에 정중하게 "우리는 그런 것 못하겠으니 아예 게시판 자체를 없애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맞선 것이다.

방통위로서는 참 난감하게 됐다. 하루 이용자 10만명 이상의 사이트 게시판과 댓글이 규제대상이기 때문에 게시판을 없앤 구글코리아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신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큰 홍보효과(?)를 거두게 됐다. 세계적 인터넷기업인 구글이 한국의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이유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소식이 전세계로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홍보효과가 'Famous(좋은 것으로 유명한)'가 아니라 'Notorious(나쁜 것으로 유명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여 한 국민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지난 4월1일부터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적용하고 있는 한 사이트의 경우 댓글이 이전보다 급격하게 줄었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통 주요이슈의 경우 댓글이 수백개 이상 올라오던 것이 본인확인제 이후 3~4개가 고작이다. 대신 스팸메일은 극성을 부린다. 방통위의 강제이후 결과적으로 '민의'는 실종됐고 '광고성 스팸메일' 전성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건전한 장터를 만들어 줘도 놀지를 못하는" 네티즌 때문인지 아니면 '민증(주민등록증)' 까고 "까불테면 한번 까불어 봐"라고 강제하는 정부에 대한 네티즌의 소리없는 '침묵의 비판'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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