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균성]주민등록번호의 종말


얼마 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가 낙마한 것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칼날 검증’ 때문이었다. 청와대 인사 검증시스템도 걸러내지 못하는 과거 비리를 찾아내 딱 끄집어냈으니 가히 ‘칼날’에 비유할 만 하다. 바짝 약이 오른 정부는 정보 제공자를 찾아내겠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 사건을 보며 보통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도 정보 제공자를 찾겠다며 법석을 떤 정부와 비슷할 것이다.

대체 박 의원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 세밀한 경로야 박 의원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 전문가는 이 궁금증에 대해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 주민등록번호.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13자리 아라비아 숫자. 이 마법의 숫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 숫자는 이를 테면 개개인의 생활의 기록이다. 금융과 대부분의 지불∙결제가 이 숫자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로 바뀌면서 개인의 모든 경제 문화 활동은 꼬리표를 달게 됐다. 특히 이 디지털은 인간의 머리와 달리 망각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 꼬리표만 볼 수 있다면 타인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세상이 됐다. 아마 천 후보 또한 제기된 비리 중 어떤 것은 진짜로 오래전에 잊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청와대 인사 검증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은 검증하는 방법이나 기술적 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돈의 팔촌의 흠까지 찾아낼 수 있는 게 지금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의 위력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말은 이제 고쳐 써야 한다. “검증의지가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사실 스스로 선택한 인물에 대해 꼬치꼬치 따져 굳이 흠을 잡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정부나 기업이 주민등록번호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뻔하다. 그 숫자의 기본 속성, 즉 집중과 기록이 가져오는 가공할 만한 힘 때문이다. 정부는 시민을 통제하는데, 기업은 마케팅에 활용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던 셈이다. 왜냐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전략이론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 숫자만 장악하면 전략은 저절로 나오게 돼 있다. 첨단이란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문제는 그 위력이 너무 세다는 데 있다. 원자폭탄에 비유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히로시마에서 딱 한 번 사용된 그것의 위력을 모르는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그것을 가지려 한다. 모든 나라가 그것을 가진다면? 그렇다.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란 것을 만들었다.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핵개발을 양보하는 데 동참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상황이 그런 운명이다. 정부를 운영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데 엄청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이득보다 위험요소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보다는 민간 기업 쪽에서 더 그렇다. 핵무기를 탈취하려는 테러 집단이 가끔 영화 속에서 준동하는 것처럼 주민등록번호를 노리는 사이버범죄 집단의 활동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그로 인한 사고는 핵폭탄처럼 치명적이다.

얼마 전 만난 그 보안 전문가는 단언했다.

“주민등록번호는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민간 기업에서는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끝끝내 주민등록번호를 고집한다면 (개인정보 유출과 이에 따른 집단 소송으로) 한 방에 갈 수도 있다. 그 대상 기업이 어디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 있는 기업가라면 그런 위험한 화약고를 굳이 짊어지고 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고 아직도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방이 적지않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gslee@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균성]주민등록번호의 종말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