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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단말기 보조금과 우상론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실험이나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선입견을 '우상'이라 불렀다. 그 중 하나가 잘못된 언어 사용에서 오는 '시장의 우상'이고, 또 다른 하나가 자신의 사색이나 경험이 아닌 어떤 권위에 의지해 잘못 판단하는 '극장의 우상'이다.

휴대폰을 살 때 현금을 보조해주는 단말기 보조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베이컨의 우상론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단말기 보조금으로 산 휴대폰은 공짜'라든지, '단말기 보조금을 많이 쓰면, 투자와 요금인하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시장의 우상'이나 '극장의 우상'을 연상시킨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 1일 CEO들을 만나 보조금 경쟁자제를 요청하더니, 방송통신위원회가 단말기 보조금대신 기본료를 깎아주는 상품을 내놓도록 이동통신 기업들에게 행정지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견 단말기 보조금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이통사들이 가입자 유치 경쟁에 ‘총알’을 쏟아붓다보니 설비투자도 안하고 요금도 내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2009년 상반기 통신사들이 퍼부은 단말기 보조금은 약 4조원, 설비투자는 당초 약속한 금액의 절반(1조9천305억원)에 불과했으니,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이 들어간, '완전 공짜폰'으로 알고 산 휴대폰에는 24개월동안 특정회사 고객으로 남아야 하는 의무가 있고, 휴대폰을 자주 바꾸지 않는 이웃들의 희생이 있다.

또한 단말기 보조금은 3G같은 비싼 휴대폰의 보급을 늘려준다는 점에서, 차세대 먹거리인 모바일 인터넷을 팔기 위한 기업들의 선투자로 볼 수 있어, 보조금과 투자는 별개 문제로 떼어 놓고 얘기할 수 없다.

보조금을 많이 써서 통신 요금인하 여력이 없다는 말도 곧바로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보조금이나 현금상품권 같은 것도 소비자 입장에선 일종의 요금할인이기 때문이다. 단지, 하드웨어 요금을 깎아주느냐 서비스 요금을 깎아주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방송통신위가 내놓은 보조금 대신 기본료를 할인해 주는 상품을 내놓겠다는 건 한꺼번에 단말기 가격을 할인받을 지, 휴대폰은 제값 받고 사거나 바꾸지 않고 서비스 요금을 할인받을 것인지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보조금과 투자, 보조금과 통신요금 인하가 반비례하지는 않는 만큼, 보조금을 없애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삼고, 여기에 정책역량을 집중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

자칫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백화점의 염가세일을 앞장서 규제하거나, 요금 경쟁 활성화보다는 특정방식의 요금인하법을 강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투자 역시 네트워크 고도화에 편중돼 인터넷기반의 망 시대에 도래할 다양한 서비스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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