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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아이폰에 두 손 들다


나는 IT 기자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컴맹에 가깝다. 첨단 산업을 취재하지만 정신세계는 고루한 편이다. 기계치를 무슨 자랑인 양 생각하는 축이다. 손 때 묻은 사전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고 컴퓨터와 전자사전으로 공부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하고 걱정한다. 느림의 평화가 붕괴되고 속도의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IT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아내는 나보다 낫다. 적어도 몇몇 애플리케이션은 수준급으로 활용할 줄 안다. 하지만 그래봐야 오십보백보다. 부창부수다. 학교에 다니는데, 책 대신 전자칠판이 득세하는 현실을 보고 개탄한다. 연필 쥐는 것조차 서툰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될까 하고 걱정한단다.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아내나 나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모두 다 IT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이 빈곤한 나로서는 친구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만들 세상이 어떠할 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끔찍할 것이라고만 짐작한다. 그 먼 훗날의 일들이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막막해 가끔 IT에 터무니없는 적의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도 미욱한 나로서는 아무런 저항 방법이 없다. 그저 컴퓨터 쓰는 시간을 조금 더 줄이고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 게 거의 유일한 대책이다.

그것이 나의 딜레마였다. 목구멍은 포도청이고 어찌하다보니 밥벌이 수단이 IT여서 십 수 년 동안 IT 찬가를 불렀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호구를 위해 되지도 않을 소리를 씨부리고 있다는 데 죄의식을 느낄 정도였다. 5년 동안 TV 없이 살고 주일마다 교회 아닌 도서관에 가 묵은 책 곰팡내를 맡는 것은 그에 대한 나와 아내의 속죄의식(贖罪儀式)이었다. 그 의식을 아이들한테 강요하였다.

안다. IT 기자로서 지금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는지. 치명적 약점을 가졌다는 사실도. 40대 중반에 반 퇴물이 되었다. 사실 석 달 전 5년 만에 40인치 LCD TV를 사면서 나와 아내는 IT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인지 모른다. 그날 밤 아이들과 함께 ‘개그콘서트’를 보며 오랜만에 낄낄댄 다음 아내는 다음에 있는 대학 동창회 카페에 “마흔 둘에 길을 잃었다”고 썼다. 나도 진공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한테도 교육자로서의 신념이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신념의 기본은 ‘나, 너, 우리’일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 식으로 하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겠다. 그런데 그게 가당키나 한가. ‘경쟁’과 ‘속도’가 난폭하게 군림하는 세상에서? 뛰면서 장기하의 노래 ‘느리게 걷자’를 듣는 꼴이겠지. 고민의 양만큼 절망의 크기도 커져 마침내 길을 잃고 만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진 내가 아무런 여한 없이 백기 들고 투항한 것은 ‘아이폰’ 때문이다. 1천300여 개의 애플리케이션을 써봤다는 한 선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선배가 막걸리를 먹으며 한 시간 동안 보여 준 그 세계는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시옹’의 정점이었다. 초고속인터넷 열풍이 불고 가상세계가 급속히 확대됐을 때 느꼈던 것보다 강도가 몇 배 더 세 보였다. 또 한 번의 섬광이었다.

다시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이 땅 파서 식구들 건사하고 내가 글 팔아 입에 풀칠하는 것처럼 내 아이들이 살 공간은 그 ‘시뮬라시옹’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러설지언정 길을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부친과 다른 공간에 살듯 아이도 나와 다른 공간에서 살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헛된 고집으로 우물 안에 가둘 일이 아니다.

서울에 사상 최고의 눈이 내린 날 밤 좋아하는 후배와 맥주 한 잔을 했다. 그 자리에서 아이폰에 백기 투항했다는 고백을 했다. 후배가 말했다. “선배, 잘했어요. 우리 아이들에겐 아이폰이 세상을 보는 창(窓)일 겁니다. 창은 닫으려고 만든 걸까요? 열려고 만든 걸까요?” 그 후배에게 덜컥 약속하고 말았다. 방학을 맞아 미국에 간 아이가 돌아오면 귀국 선물로 반드시 아이폰, 혹은 옴니아를 사줄 거라고.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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