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균성]애플의 혁신과 산업 생태계


애플의 ‘아이’ 시리즈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은, 내 생각에, 소비자 마음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라는 국내 모 회사 광고가 있다. 그런데 ‘아이’ 시리즈야 말로 그렇다. 고기능을 채택한 첨단 제품이지만 사용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특별하게 배울 필요도 없다. 직감적으로 ‘생각대로’ 쓰면 틀림없다. 원하는 기능을 다 제공하면서도 쓰기 편하니 소비자로선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애플은 ‘아이’ 시리즈를 통해 또 하나의 큰 가치를 드러냈다. 더불어 사는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혁신적인 답을 내놓은 것이다. 썩어가는 고인 물을 휘휘 저어 산소를 공급해 수질을 개선한 것과 같다. 다 죽어가는 판을 되살리고 갈등하는 구조를 일거에 정리해 IT 산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느 정부도 어떤 정책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셈이다.

먼저 일을 낸 것은 디지털 음원 쪽이었다. 인터넷과 MP3를 통한 디지털 음원 시장의 급격한 확산으로 음반 시장이 추락하자 저작권자와 디지털 음원 유통업계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을 때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스’라는 투톱을 들고 나왔다. 이 분야에서 결코 선발이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투톱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저작권자 기기업체 유통업체가 공생할 플랫폼을 창출해냈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는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통화할 수 있는 손 안의 PC’를 통해 무선인터넷 시장이란 새 판을 열었다. 휴대폰의 기능을 거의 무한으로 확장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앱스토어다. 앱스토어는 아이폰을 더 가치 있게 해줄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자발적으로 모이게 하는 생태계 구조의 핵이다. 이 생태계의 등장으로 수많은 IT 개발자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었다.

28일 발표된 태블릿 PC ‘아이패드’와 ‘아이북스’도 그 연장선에 있다. 9.7인치 멀티터치 스크린을 통해 전작인 ‘아이팟’과 ‘아이폰’을 대형화한 아이패드는 수많은 콘텐츠 업계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북스는 이미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출판 및 신문 잡지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그라지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물론 ‘아이’ 시리즈가 모든 기업과 공생하는 건 아니다. 위력적인 만큼 유탄을 맞아 휘청이는 기업은 더 늘어나고 적 또한 더 많아지게 돼 있다. 애플 또한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만큼 자사 이익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며 이를 위해 ‘더불어 사는 생태계’는 분명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 생태계에 대항하는 기업한테는 잔인하고 가혹한 결과를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점까지 탓할 수는 없다. 사회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스포츠 같은 선의의 경쟁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애플 중심의 생태계가 그 어느 것보다 넓은 삶의 공간을 창출했다는 사실이며, 이는 애플과 경쟁하는 수많은 기업을 자극해 또 다른 생태계를 건설하게끔 강요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산업은 진보하고 소비자는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혜택을 얻게 된다.

이런 사실은 아이폰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수년전부터 개방을 통한 무선 인터넷 활성화에 대한 요구가 거셌지만 기술에 문제가 없음에도 차일피일 시간만 흘러갔다. 시장을 주도해야 할 큰 기업이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변신의 의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요구는 이미 충분히 무르익었는데 아무도 둑을 열지 않았고 갇힌 물은 소비자 불만 속에 썩어가고 있었다.

이를 일거에 바꾼 게 아이폰이었다. 아이폰이 출시되자마자 산업도 기업도 시장도 요동쳤다. 뒤늦었지만 정부도 기업도 개방과 무선인터넷이 살 길이라며 온갖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그 정도면 큰일을 했다. 그런 애플이 오늘 아이패드를 내놓았다. 시장에선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계 모든 언론이 새벽부터 난리(?)를 친 걸로 봐 심상치 않은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gslee@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균성]애플의 혁신과 산업 생태계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