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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물산장려운동'의 종언


한국에 소형 전자기기 산업이 뿌리내린 건 1990년대 중후반이다. 삼성전자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이 국내 시장에서 ‘거함’ 모토로라를 격퇴시킨 게 그 즈음이다. ‘애니콜’은 ‘언제 어디서든’을 뜻하는 ‘Any'와 통화를 의미하는 'Call'의 합성으로 만들어졌다. ‘산악이 많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컨셉을 갖고 있다. 제조자가 한국 지형을 잘 안다는 의미였고, ‘국산 장려’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를테면 전자 분야의 ‘신토불이’ 운동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애니콜’을 비롯한 국산 휴대폰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정부가 앞장서 CDMA라는 첨단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이에 질세라 기업들도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범국가적인 노력 끝에 품질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국산 제품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 소비자 애국심이 한 몫 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순 없다.

‘소비자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데 언론도 한 몫 했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소비자나 언론이나 기업이나 정부나 한 통속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물산장려운동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에게 충분히 명분 있는 일이었다. 그게 ‘부국(富國)’의 길이었고 그 과실을 모두가 나누면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전자 산업은 그런 총의(總意)로 키운 것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격세시감을 느끼게 한다. 십 수 년 전의 그 애국심은 간 데 없고 외려 국내 휴대폰 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미국 애플에 쌍수를 들며 환호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소비자 십 수 만 명이 애플 제품을 홍보하며 돌아다니고 있고,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자, 아직 국내에서는 판매되지도 않는 제품을 단체로 미국에서 구입해오자는 소비자 운동(?)까지 일고 있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신(神)’으로 모시고 기꺼이 스스로를 그의 신도라고 부른다. 이런 분위기는 또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가속이 붙고 있다. ‘애플빠’로도 지칭되는 이들 ‘잡스 신도’는 특히 첨단 IT 기기에 대한 흡수 속도가 빠른 이른바 ‘얼리 어덥터(Early- Adapter)들로 구성돼, 신속한 정보와 깊이 있는 사용기로 ‘애플 전도사’ 역할을 흠잡을 수 없이 해내고 있다.

국내 기업이 뒤늦게 트위터에 계정을 만들고 대응해보지만 역부족이다. 한 두 명의 홍보 전담자를 배치해 가지고는 자발적인 이들 신도의 물량 공세를 당할 재간이 없다. 논쟁을 지켜보기에 외려 안쓰러울 정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제 우리 국민에게 더 이상 애국심은 없는 것인가. 김연아와 최경주의 선전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여전히 다른 분야에서는 뜨거운 애국심이 출렁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소비자 상당수는 변심한 것일까. 그 답을 찾아야 한국 전자산업이 부활할 수 있다.

소비자 변심의 근거는 ‘글로벌’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업 정체성. 일부 발 빠른 소비자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을 이제 국민이 키워줘야 할 국내 기업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애플과 다를 바 없는 다국적 기업으로 보는 것이다. 주주 비중도 외국인이 많고 매출도 해외부문이 더 크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경우 해외 생산량이 이미 국내를 앞섰다. 이제 대기업이 잘 된다고 자기 주머니가 넉넉해질 수 있는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국내 기업에 배신감도 큰 듯하다. 일부 품목의 경우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해외에 먼저 내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국내에 내놓을 때는 성능을 낮추거나 같은 성능이라면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다. ‘국내 소비자가 봉이냐’ ‘역차별이다’는 기사가 종종 나고, 기업은 해명하지만, 소비자는 마음을 바꾼 뒤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애국주의에 빠져 있는 곳은 일부 언론인 듯하다. 대기업 광고에 목을 맨. 그런 기사의 경우 된통 당하기 일쑤다. 속을 빤히 꿰뚫고 있는 ‘애플 전도사’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과 인력과 상품이 글로벌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있고 '물산장려'라는 애국주의는 죽었다. 적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기업이 믿을 것은 하나뿐이다. 소비자의 ‘니즈’와 ‘욕망’을 찾아내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놓는 것. 그런 근본뿐이다. 한편으로는 고집스럽고 극히 폐쇄적이기까지 한 잡스가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것은 그가 그 근본에 기댄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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