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9> 전쟁의 끝판왕이 된 화약무기


1519년,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두꺼워도 대포가 무너뜨리지 못하는 성벽은 없다” 지난 500년간 전쟁기술은 아주 급진적으로 발전했다. 이 세상에 화약이 발명된 다음 화약무기가 만들어진 이후 화약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위상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화약무기 발전이 빨라지면서 전쟁 무기의 주력으로 등장하게 됐고, 화약무기가 없는 경우에는 고전을 면할 수 없었다.

동양에서 화약과 화기는 원(몽골)과 명나라 등에 의해 더욱 발전했지만, 초기 기술은 사실상 송·금 대에 완성됐다. 1234년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골은 앞서 1214년 금의 수도인 북경을 점령하면서 화약 공장을 접수했다. 그리고 로켓무기의 원조인 비화창(飛火槍)과 폭발물인 진천뢰(震天雷) 등 화약무기와 관련된 기술자들을 몽골로 데려갔다.

초기 몽골군은 화약무기 보다 자신들의 용맹성에만 의존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몽골군도 전쟁이 계속될수록 다양한 화약무기를 사용했다. 특히 몽골의 유럽 원정으로 인해 화약과 화약병기를 서방에 전한 사실은 화약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셀트 소총통. 윗 그림을 보면 유럽의 대포가 어디에서 전래되었는가를 바로 알 수 있다. 대포에서 화살을 발사하려 하고 있다. [그림=유지곤 제공]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셀트 소총통. 윗 그림을 보면 유럽의 대포가 어디에서 전래되었는가를 바로 알 수 있다. 대포에서 화살을 발사하려 하고 있다. [그림=유지곤 제공]

◇ 화약 무기를 서방에 전파한 몽골의 유럽 원정

칭기즈칸과 그 자손들은 1219년부터 1280년까지 중동은 물론 폴란드, 헝가리까지 동부 유럽을 정벌했다. 몽골의 서정(西征) 군은 1241년 폴란드 발스타드를 공격할 때 독약연구(毒藥煙毬)를 사용했다. 같은 해 모라비아(지금의 슬로바키아)를 공략할 때는 화전(火箭)으로 사원을 불태웠으며, 1258년 바그다드전에서는 화약을 충전한 진천뢰를 사용했다.

1259년 몽골군이 송나라를 정벌할 때는 대나무 통으로 만든 초기의 총인 돌화창(突火槍)과 같은 화약무기를 개량해 청동으로 총을 만들어 이용했다. 당시 고도의 화약 기술을 갖고 있던 남송을 공격할 때는 천하무적을 자랑하던 몽골군이었지만 수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1264년 고려·몽골 연합군의 일본 원정 때는 진천뢰와 동일한 것으로 추측되는 철포를 사용했다고 일본 문헌에서 전한다.

오스만튀르크 역시 화약무기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대형 총포를 만들 줄 아는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Urban)을 고용하여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렸다. 화약 기술 때문에 2천 년 로마 제국 역사가 막을 내렸고 오스만 제국이 중동의 통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453년 난공불락이라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 때 오스만이 동원한 대포는 모두 69문에 달했다. 이중 13문은 500kg 이상의 돌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화약무기 사상 최대의 괴물로 알려진 거대한 ‘우르반’(Urban) 대포였다. 가장 큰 거포는 포신 길이만도 8미터가 넘고, 돌포탄의 무게는 600kg을 초과했다.

19톤에 달하는 육중한 우르반 대포를 운반하기 위해 사륜차 30대와 황소 60마리, 사람 20명이 동원됐고, 이와 별도로 250명의 병사가 앞에서 도로나 다리를 보수하면서 움직였다고 한다. 하루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4km이고 하루 7발의 포탄을 발포할 수 있었다. 지금도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에는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지름 46인치짜리 돌 탄환 2개가 전시되어 있어 당시 대포의 크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튀르키예 파노라마 박물관에 그려져 있는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 오스만 병사들이 발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르반은 결국 전쟁터에서 그가 만든 대포알 파편에 맞아 죽고, 당시 비잔틴 편이었던 유럽의 강국 헝가리(우르반의 조국)는 그 후 오스만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역사는 냉혹하고도 아이러니한 것인가. [그림=유지곤 제공]
튀르키예 파노라마 박물관에 그려져 있는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 오스만 병사들이 발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르반은 결국 전쟁터에서 그가 만든 대포알 파편에 맞아 죽고, 당시 비잔틴 편이었던 유럽의 강국 헝가리(우르반의 조국)는 그 후 오스만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역사는 냉혹하고도 아이러니한 것인가. [그림=유지곤 제공]

◇ 세계를 지배한 15세기 유럽의 화약 혁명

화약은 대략 9세기 전후 동양에서 발명했지만, 실질적인 화약 혁명은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오히려 화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서구였다. 당초 유럽에는 1267년 무렵 폭죽과 같은 오락거리로 화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는 남송과 교역했던 인도와 이슬람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몽골의 침략과는 다른 경로였다.

1326년 유럽인들은 화약으로 총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화포와 함께 기사 계급의 지배가 종식됐고, 봉건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포가 등장하기 전 유럽은 작은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영주를 지켜준 건 두꺼운 성벽과 말탄 기사였다. 하지만 화포로 무장한 군대로부터 영주를 지킬 수는 없었고, 화약에 적응하지 못한 봉건 기사들은 세력에서 밀려나게 됐다.

무기 제조업자는 대포와 머스킷 같은 새로운 전쟁 도구를 만들었으며, 이제 군대에서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무기로 무장해야 했다. 문제는 화약을 사용하는 군대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어 그 돈을 새로운 군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강대국은 전쟁을 위해 세금을 걷고,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했다. 또 새로운 땅을 약탈하며 더 많은 돈을 모았고, 그 땅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더 많은 세금을 걷었다. 유럽의 강력한 군주 루이 14세는 조세 수입의 45%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90%를,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85%를 군비에 지출했다.

강대국은 전쟁을 벌일수록 더욱 강해졌다. 스페인은 적극적으로 화약을 활용했기 때문에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강대국이 됐다. 특히 카를 5세,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을 유럽 최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지난 500년간 역사에서 유럽의 군주로서 최초로, 가능한 넓은 유럽 대륙과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범선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강철 칼과 석궁, 대포, 화승총으로 무장한 채 많은 신흥 제국과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16세기 초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은 해상 화기의 활용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영국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는 우월한 대포를 개발해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침하고 대영제국으로 우뚝 섰다.

--------------------------------------------------------------

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유지곤 대표
유지곤 대표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9> 전쟁의 끝판왕이 된 화약무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