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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점, 남자의 차밍 포인트를 매도하지 마~!


서울 A호텔 커피숍. 스물아홉 살 과학기자 길라임의 소개팅 자리.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다. 이름 김주원, 직업은 백화점 영업팀장, 나이 서른 셋, 키 184cm, 훈훈한 인상까지 겸비한 남자가 나온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 그냥 느낌이 좋다. 설레는 마음에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향기로운 호텔 화장실에서 35분 동안 거울만 보다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혹시 저 멀리 보이는 바람직한 남성이 바로 나의 파트너? 그가 날 알아보고 일어났다. 올레~!

최대한 조신한 포즈로 인사한 뒤 고개를 들어 자세히 얼굴을 보는데…, 헉! 코 옆에 붓글씨로 방점을 찍은 듯 묵직하게 위치한 저것은 '오서방점'?

점까진 애교로 봐줄 수 있다지만, 그 한 가운데 나있는 굵고 시꺼먼 털은 어찌한단 말인가. 으악~! 당장이라도 핸드백 속 족집게를 꺼내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근질거리는 손을 억지로 참으려니 속이 탄 나머지 비싼 커피를 국 먹듯 후루룩 들이켰다.

그리고 시선을 둘 곳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그의 다정한 말투가 너무 감미로웠다. 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콧바람에 팔랑이는 '털' 세 가닥에 쏠려 있었다.

'털털'하고 담백한 성격의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번뜩, 다음 달 기사 주제를 '점'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점에 대한 모든 것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점은 멜라닌세포 계통인 모반(母斑)세포가 증식해서 생긴 것이다.

멜라닌세포에서는 자외선으로부터 인간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색소가 만들어지는데, 색소의 색깔은 주로 검은색이다. 따라서 멜라닌세포 계통의 모반세포가 증식해 생긴 점의 색깔도 대부분 검은색, 암갈색 등을 띠는 것이다.

점은 피부의 어느 층에 위치했는가에 따라 경계 모반, 복합 모반, 진피 내 모반으로 구분된다.

경계 모반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어린 점으로, 피부의 가장 바깥인 표피에 있으며 만져 보면 거의 평평하다. 시간이 지나면 경계 모반이 크고 진한 색으로 변하면서 피부 아래층으로 이동하는데, 이것이 복합 모반이다. 복합 모반은 표피 아래에 있는 진피에 위치해 있고 볼록 솟은 모양이다.

진피 내 모반은 복합 모반보다 더 늙은 점으로 진피의 깊숙한 곳이나 지방층에 자리 잡고 있다. 사마귀처럼 반구 모양으로 두드러지게 튀어 나와 있어 피부에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이며 털이 나 있기도 한다.

보통 점이라고 하면 검은색을 떠올리기 쉽지만, 점의 색깔은 매우 다양하다.

검은색 점은 앞서 말했듯이 오래된 것일수록 짙은 색을 띤다. 갈색 반점은 밀크커피색 반점이라고도 하는데 동그라미, 지도 모양 등 생김새가 다양하고 우리 몸 어느 곳에나 생길 수 있다. 색이 옅어서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크기가 커지고 색도 진해진다.

푸른 점은 두 가지가 있는데, 오타씨반점과 몽고반점이다. 오타씨반점은 눈 주위에 푸르스름한 색의 반점을 말하는데, 눈알 흰자위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10세 이전 여아에게 주로 많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진해진다. 몽고반점은 주로 황인종 아기들의 엉덩이에 생기는 점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90%는 가지고 태어나며, 5~7세가 되면 거의 사라진다.

붉은 점은 정상이 아닌 혈관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기는 것으로, 혈관종과 포도주색 모반 두 종류가 있다.

혈관종은 주변 피부보다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어 딸기 반점이라고도 부른다. 몽고반점과 마찬가지로 신생아 때부터 생후 1년까지는 커지다가 그 후부터 작아지면서 없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혈관종보다 색깔이 옅은 포도주색 모반은 비교적 편평하며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 취재하다 보니 문득 소개팅한 그 남자의 점이 떠올랐다. 짙은 색에 털이 난 그의 점은 '검은색 진피 내 모반'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점은 양성종양으로 그냥 피부에 두어도 무방하지만, 악성종양일 경우 피부암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남자의 점, 방치해도 괜찮을까?

점에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피부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

① 갑자기 커지는 경우 ② 주변에 불규칙한 경계나 색 변화가 생기는 경우 ③ 피가 나거나 갈라지고 가려운 경우 ④ 염증이 생기거나 통증이 있는 경우 ⑤ 점에 나 있던 털이 빠지는 경우

털이 난 점은 악성종양인 암으로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유 없이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김주원, 그 사람이었다.

백화점 세일 준비 때문에 엄청 바빠서 이제야 연락을 한다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에 함께 미술관에 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알겠다고 말했다. 너무 쉽게 승낙했나…?

전화를 끊고 나서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문득 얼굴에 난 점의 위치에 따른 의미가 궁금해졌다. 눈과 눈 사이에 점이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고, 인중에 점이 있으면 상냥한 성격이라고 한다.

왼쪽 눈 아래 있는 점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눈물점이 아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왼쪽 눈썹 아래 점이 있는 사람은 엄청난 부자가 되며, 코 옆에 점이 있으면 마음이 착해 손해를 보는 타입이란다.

비록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그의 성품이 착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티끌만한 작은 점 하나가 눈에 거슬려 그동안 잃어버린 인연이 너무 많다. 점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단점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연초에 용한 데서 점(占)을 본 엄마는 내가 올해 안에 평생의 배필을 만난다고 했다. 주말에 그의 얼굴을 보면 '오서방점'으로 보였던 그 점이 '매력점'으로 보일 것 같다.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다.

/글 이혜림 동아사이언스 기자 (도움 : 아주대학교 피부과학교실 김유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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