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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法]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말죽거리 잔혹사'


각종 스포츠계와 연예계 전반에 학교폭력 논란이 확산되면서 ‘학교폭력’은 요즘 스포츠·연예 관련 기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얼마 전 유명한 스포츠스타에서 시작된 소위 ‘학교폭력 사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세가 식기는커녕 거의 매일 다른 스포츠스타나 연예인 등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새로이 지목되면서 날이 갈수록 세간의 주목을 받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은 작금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비단 우리 사회의 문제만도 아니며, 그런 탓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유독 기억에 남는 영화는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 와!”라는 대사로 유명한 ‘말죽거리 잔혹사’ 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선도부장 차종훈(이종혁 분)과 그를 따르는 패거리는 학교의 비호하에 폭압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교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린다. 이와 같은 부당한 상황에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평소 튀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현수(권상우 분)는 절치부심하며 쌍절곤을 연마한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오자 현수는 위 패거리에 정면으로 맞서고 결국 힘으로 제압한 후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위 영화를 보면서 매일매일 부단히 신체를 단련하고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현수의 성장과정에 감정이입하다가 마침내 선도부장 패거리의 위세나 조롱에 굴하지 않고 화끈하게 복수하는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쾌감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그런데 만일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위 처절한 복수극이 오늘날의 학교에서 실제로 발생한다면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지금부터는 그런 상황을 가정한 후 현재의 법과 제도를 기준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재구성

현수에게 맞은 차종훈 패거리의 부모들이 단체로 학교를 찾아와 교장과 책임교사에게 현수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힘에 따라 책임교사는 싸움에 연루된 당사자들, 즉 현수와 종훈 패거리를 개별적으로 불러 사안을 조사하고, 위 싸움을 목격한 학생들의 진술도 확보하였다.

책임교사가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이 사안은 단순히 일방이 학교폭력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양측이 서로에게 폭행을 가한 쌍방폭행사건에 해당하고, 그 외에도 차종훈 패거리들이 많은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학교폭력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군다나 현수와 차종훈 패거리 모두 전치 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진단서를 발급받은 상태라 교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미한 학교폭력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결국 교장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할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학교폭력이 발생한 사실을 보고하였다.

이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한 회의에 현수와 차종훈 패거리는 가해학생인 동시에 피해학생의 자격으로 참석하고, 그동안 차종훈 패거리에게 당한 학생들 중 일부도 피해학생의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위원장을 비롯한 심의위원들은 학교가 제출한 학교폭력사안조사보고서 및 회의에 참석한 학생들·학부모들과의 문답 등을 통해 해당 사안의 실태를 파악한 후 법정 기준에 따라 조치를 결정하게 된다.

위 법정 기준에 해당하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화해 정도를 기본 판단 요소로 하여 각 0점부터 4점까지의 배점을 산정하고 합산한 후 총점에 대응하는 조치(서면사과부터 퇴학처분에 이르기까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수는 학교폭력의 지속성은 없다고 판단되었으나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심각성, 고의성, 화해 정도뿐만 아니라 반성 정도 부문에서도 최고점인 4점을 받아 총점 16점으로 전학조치가 결정되었다. 반면 차종훈 패거리는 반성의 의사를 적극 피력하여 반성 정도 부문에서 2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심각성, 고의성, 지속성, 화해 정도 부문에서 각각 최고점인 4점을 받으면서 총점 18점으로 현수와 같은 전학조치를 받게 되었다(16~20점의 경우 전학과 퇴학처분 모두 가능하지만 통상 전학조치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상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위와 같이 사안이 전개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만일 현수가 개인적인 복수를 택하지 않고 곧바로 학교폭력상담실에 학교폭력을 신고했다면 어땠을까? 온전히 피해학생의 신분인 현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교장에게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등 긴급보호를 요청할 수 있으며(심리상담 등을 받는 데에 사용되는 비용은 가해학생의 보호자가 부담한다), 학교 측은 가해학생들에 대한 처분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현수가 가해학생들과 분리하여 학교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제반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해학생들에 대한 전학 조치가 확정되면 더이상 현수는 학교에서 가해학생들과 마주칠 일이 없게 된다.

◆쌍절곤보다 가까운 법

사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처럼 개인적인 복수에 성공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선 좀처럼 있기 어려운 일이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은 학교폭력을 당하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고 버티다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학교폭력으로 마음고생이 심한 현수가 옆에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학교에 다니면서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을 텐데 굳이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쌍절곤을 연마하며 홀로 힘들게 내면의 두려움과 치열하게 싸울 필요 없다. 그냥 내일 당장 학교폭력상담실을 찾아 가거나 아버지께 현재 처한 상황을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만 내면 충분해.”

우리 사회에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학교폭력과 관련된 소송을 수차례 수행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법과 제도가 나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부디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학창시절을 만끽하며 ‘하고 싶은 거 다하는’ 현수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학생의 본분은 지켜가면서 말이다.

/복성필 변호사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복성필 변호사는?

국민대학교 산학멘토위원으로 현재 법률사무소 삼흥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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