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33> '괜찮다'는 말, 믿어도 될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A씨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니, 아픈 데 없어요? 잘 지내세요?" "그럼, 잘 지내지, 내 걱정은 하나도 하지 마. 바쁜 네가 건강 잘 챙겨야지." 도리어 자식 걱정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니, 유난떨 것이 없다며, '나는 다 괜찮다'고 하시지만 '노인건강과 가을하늘'이라는 속담처럼 변화무쌍한 것이 노인의 건강. 갑작스럽게 쓰러지거나 행동 변화를 보이게 되면 자녀들은 더욱 허둥거리게 된다. 미리 조짐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갑작스러운 변고로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윤종률(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최종녀(용인 함춘요양원) 원장에게 조언을 구해 보았다. 윤 교수는 "부모님 나이가 75세가 넘으면, '괜찮다'는 말을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75세 이상이면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41.1%가 두 가지 이상의 의료, 요양의 필요를 갖고 있다. 노인의 경우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행동이 이상해졌을 때 원인을 찾기가 어려운 점도 특징이다. 기저질환뿐 아니라 노화로 인한 변화, 우울 등 심리적 측면, 치료(약물 부작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부모님의 건강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는 갑작스럽다고 느껴지지만, 모든 질병에는 전조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윤 교수는 특히 살이 갑자기 많이 빠졌다거나, 평소보다 기운이 없거나 어지럼증 등이 있는지 살펴볼 것을 권한다. 또 자세가 불안해 보이거나, 소변과 대변을 지리는 등도 주의해서 보아야 할 증상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거꾸로 지나치게 자는 등 수면장애, 정신착란이나 헛소리 등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이는 분명한 건강 이상신호이다. 또는 최소한 2주 전에 비해 신체적 변화가 보인다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쁜 데 올 필요 없다'는 말에 안심하지 말고 자주 찾아가서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정답이다. 특히, 함께 잠을 자는 것이 부모님의 건강 이상을 알아채는 데 중요하다.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사람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자식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던 통증 때문에 끙끙 앓거나 화장실을 간다고 자주 일어서는 모습을 본다면,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갑작스러운 질병도 미리 보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병들고,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하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을 알아채지 못해서 일찍 돌아가신다면 자녀들은 후회가 클 수 밖에 없다는 것.

최 (함춘너싱홈) 원장은 부모님의 치매가 걱정된다면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권한다. 치매의 경우, 뇌기능손상이 주요 원인이지만 고혈압, 고지혈증 등 질병이 원인이 돼 치매가 발병하기도 한다. 국가가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대사질환과 관련해 중성지방 및 콜레스테롤을 검사한다. 콜레스테롤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건강검진 결과, 우리 몸에 좋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콜레스테롤)과 나쁜 저밀도콜레스테롤(LDL콜레스테롤)의 수치와 이의 비율을 알 수 있는데 비율이 좋지 않으면 혈관 내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여 뇌졸중, 뇌경색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이로 인한 치매발생의 위험이 높다.

제2형 당뇨병도 강력한 치매유발 요인으로 꼽힌다. 혈액 내 높은 당이 뇌를 비롯한 장기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지혈증이 있거나 혈당이 높은 등 치매 위험요인이 있다면 6개월에 한 번 정도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다 큰 맘 먹고 대학병원에서 비싼 건강검진을 받게 해 드리는 것보다 동네 병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병원은 아파야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자녀들이 부모님을 동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의사, 간호사와 미리 얼굴을 익혀 놓는 것도 좋다. 부모님 상태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고 내가 자주 가지 못하더라도 대신 상태 변화를 주시해서 급격한 변화에 대비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는 개인의 질환이나 건강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진료와 치료를 하는 '주치의제도'가 있지만, 한국은 전문의를 중심으로 의료체계가 이루어져 있다.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이 많으며 증상이나 진행이 개별적,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노인의 경우 전문의제도보다 주치의제도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큰 병은 대학병원에서 치료하지만 가벼운 질환이나 예방을 위해서는 동네의원과 유대를 형성하면서 나의 '주치의'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치매의 경우 평소와 비교해 행동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평소보다 음식을 짜게 한다거나, 외출을 나갔다가 길을 못 찾겠다며 그냥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지는 등 행동 변화가 나타난다면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이다. 치매를 진단 받았다고 해서 부모님의 생활을 지나치게 구속할 필요는 없다.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면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약물을 줄일 것"을 당부한다. 식사 때마다 한 움큼씩 약을 먹는 노인이 많은데 해외연구에 따르면 12가지 이상의 약물을 먹는 노인들에게는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났다. 국내의 의료시스템은 전문의에게 각각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는다. 또한 개인의 의료정보가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 만나는 의사는 환자가 현재 어떤 약물을 먹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처방전이 늘어나고 약물의 가짓수도 증가한다.

복합약물 복용의 부작용으로는 근육이 쑤시고 약해지는 증상, 골감소, 혈액내 칼륨수치가 높아지면서 심장통증, 심장쇠약, 낙상과 망상, 소화불량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평소 유대감을 형성한 동네의사에게 약물을 들고 가서 줄여도 되는 약물,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는 약물 등에 대해 상의를 하는 것도 좋다.

부모님들은 '살 만큼 살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80, 90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길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0세, 120세의 수명연장을 위해 과학기술혁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충분히 살았다'의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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