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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덕의 실리콘밸리 바라보기]색다른 불경기 대처법①


경기침체에 대한 접근차…'문화트레이닝'과 '역공'이 필요한 때

하루 중 가장 온도가 가장 낮게 내려가는 때는 새벽이라 한다. 동틀 무렵이 가장 춥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말해, '추워질수록 따스한 햇살이 가까워진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불경기의 한파 속에서 '아직은 끝이 아니야, 한 1년은 더 단단히 각오해야 해'라는 인식이 실리콘밸리 주변 회사들에선 아주 팽배해지고 있다. 다행히 자동차용 유류비는 극과 극을 오간 끝에 2008년 말 무렵 연중 최고치보다 2배 이상이 떨어져 그나마 위안을 준다.

이곳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업 종업원들은 해고통지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며 출근을 하곤 한다. 대부분 회사들은 이미 법적인 절차에 따라 전 직원들에게 '언제 해고조치를 내릴지 모른다'는 통고를 한 상황이다. 그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종업원들은 초조하고, 불안해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출입증을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리고 무장한 사설 경비원이 뒤에 서서 '한 시간 내로 짐을 싸서 나가라'고 한다. 자기 개인사물만 정리할 뿐, 업무용 컴퓨터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 이곳 '실리콘밸리식 명퇴(?)' 장면이다.

업무 인수인계, 송별식, 거래선과 마지막 뒷정리…. 사표가 수리되기 전에 혹은 명예퇴직 행사를 하기 전에 최소한 마무리할 시간을 주는 우리의 수순과 사뭇 다른 광경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직원들이 해고되더라도 각종 프로젝트나 진행되던 일들은 '끊김현상' 없이 잘 연결된다. 평소 투명한 업무처리 체계 때문인가?

어쨌거나 대량 해고 조치가 취해진 이후 살아남는 직원들도 서로 씁쓸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뭐 별로 신경 쓸 것 없다는 분위기다. 인지상정이라고 떠난 사람 그리워하고,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섭섭하기는 같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취업•업무에 관해 인종차별이 꽤 심하게 벌어진다는 중부나 동부지역과 달리 서부지역,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업에선 백인계보다 아시아계 직원이 더 많은 곳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해외 이주민들에게 있어 해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비자, 영주권 취득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신분유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피부색을 떠나 이미 '미국화된' 외국인들은 여유롭게 사슴사냥이나 여행, 차고정리를 하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반면 이러한 비상사태에 따른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일부 한국기업인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분위기다. '20년만의 한파'라고 떠드는 언론의 표현에 애를 태우는 것은 물론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경제침체가 지속될수록 미래를 준비하며 연구개발(R&D), 홍보, 마케팅에 돈을 쓴다고 하지만, 한국기업인들은 몇 년 후 일이 잘 풀렸을 때나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아웃소싱을 하던 여러 기업들이 이른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위해 해당 업무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거나, 급격한 환율 움직임을 이유로 한국기업들에 '가격 후려치기'를 하려는 분위기도 읽혀지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일련의 경기침체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외국기업의 새로운 접근 방법이 기업 간 인수합병(M&A)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던 중국 경영진들이 한국 내 종업원들의 회식비와 접대비 등을 걸고넘어지며 회생방안을 추궁하다는 소식이 이곳 실리콘밸리에선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업무상 인정하는 접대비용은 선물이나 상품권 등을 포함해 5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 동네 사람들이 한국의 접대문화를 파악하면서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불경기 속 글로벌기업의 마케팅을 연구•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리고 있지만, 이곳 기업들의 마케팅 방법은 더 다양하고 실질적인 면이 없지 않다. 이론적인 분석으로, 혹은 대세의 흐름을 읽으며 대처하는 방법 못지않게, 실제 사업에서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꾀하는 이른바 '라운드 테이블 미팅'이 더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라운드 테이블 미팅이란 단어 그대로 둥그런 탁자에서 얼굴을 맞대고 상담과 네트워킹을 하는 마케팅 형태를 말한다. 전시회나 엑스포에서 기업의 이미징과 브랜딩 작업을 하는, 그래서 대규모의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방법이 아니라, 실제 업무상에 필요한 협력사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적은 비용으로 실속 있는 회의와 상담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절감형 회의가 우리 기업의 접대자리와 다른 것은 주로 점심시간을 끼고 하거나, 컨퍼런스 등과 함께 아침식사 시간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효용가치 비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할 수는 없지만, 글로벌기업들의 이러한 흐름과 양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얼마 전 있었던 미국기업 임원의 '무례'가 우리 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해 소개한다. 실리콘밸리의 한 기술 솔루션 제공회사가 한국의 IT기기 제조업체와 거래관계를 만들기 위해 술 잘 마시는 임원을 한국으로 파견했다.

이미 한국의 '갑을관계'에 익숙한 이 임원은 자신이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한국회사와 미팅에 1시간 반 이상이나 늦게 나타났다. 한국회사 입장에서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약속시간을 잡고도, 이를 어긴 이 미국회사 임원은 슬리퍼를 끌고 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갑인데 제가 뭐 서두를 게 있나요?"

술이 덜 깬 채 툭 내던진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 것인가. 한국기업의 사업관계 형성과 관련한 소소한 관행도 이미 국제화됐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경제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기업의 관행을 파악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고 이는 것이다. 외국기업들은 한국기업을 접하기 전에 잘 짜여진 '문화트레이닝'으로 한국의 관행을 공부한다. 한국의 문화와 관습, 사업요령을 숙지하는데 하루 400만원 이상의 예산을 아낌없이 쓰는 곳들도 있다.

우리도 이제 우리를 향한 외국기업들의 이러한 '인바운드' 관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도 '그들만의 방법'에 접근하기 위해 혹은 효과적인 '아웃바운드' 마케팅 전술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불황 속 해고, 사업 일구기, 성공적인 돌파. 가파른 경기침체에 대한 한국기업과 글로벌기업의 다른 접근방법 속에서 이 3가지 요소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요령을 지혜롭게 모색해보자. 우리는 가진 자원이 별로 없어도 세계가 경이롭게 바라보는 IT 강국이다. 글로벌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휴대폰 기술과 문화, 그리고 각종 빠른 기술에 놀랍도록 잘 적응하는 10대와 여러 인프라를 풍족히 보유한 대한민국이 아닌가.

/김홍덕 세미컴 대표 column_hord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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