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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나의 다빈치 콜렉션] 100년을 치료하는 병원이 되려면…


모노즈쿠리 인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였다. 영화 ‘리빙 라스베가스’가 남겨준 잔향이었다. 여러 형상의 호텔 건축물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건너 온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것조차도 내겐 즐거움이었다. 학회 세미나에 참가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굳이 말하면 3:7 정도는 새로운 것을 보거나 실컷 잠자며 쉬고 싶다는 기대가 오히려 더 컸다.

다음날 아침, 3천여 명의 치과의사들이 독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각국에서 모여 세렉(CEREC)을 활용한 치료를 토론하고 공부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섰다. 적어도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치과 치료에 IT기술의 융합하여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거나, 시도하려는 치과의사들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가슴에 단 이름표에 “Korea”가 적혀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왠지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와 동시에 은근한 경쟁심을 갖게 했다.

강의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었다. 꽤나 유용한 시술상의 테크닉을 강연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의 24시간을 설명하며 변화한 진료프로세스를 설명하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본질적인 치의술이나 병원 마케팅 관련 부분은 특히 나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이 강연자로 나오는 게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빈약함이 느껴졌다.

‘치료의 본질적 변화와 병원의 경영적 발전을 꾀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CEREC 또는 IT와 치의술의 융합이 왜 필요한지, CEREC으로 가능한 검증된 치료 및 경영 혁신의 최대치는 어디까지인지’ 설명해 주는 이가 없었다. 치과계 선각자들이 변화하게 된 모습은 물론 그 과정과 결과까지 속속들이 배우고 싶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 우리는 그 순간 보다 현명하고 빠른 판단을 하기 위해 ‘본질’을 학업 하는 것인데, 정작 그 ‘본질’이 담겨 있지 않았다.

작은 예로 앞니심미치료를 할 때에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상악전치부 ‘Incisal offset’이 너무 크고 ‘토끼이빨’처럼 보이며 상대적으로 측절치가 너무 작게 느껴질 때, 우리는 측절치의 길이를 증가시키는 라미네이트 시술을 바로 할 것인지, 아니면 측절치의 정출을 유도하는 치아교정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라미네이트 시술로 치료를 결정했을 경우, 이어지는 선택과 판단은 다시 치료의 내구성면에서 아래전치부와의 교합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수행되는 하악전치부의 길이조정, 측절치부위의 설면에 약간의 두터운 느낌에 대한 환자고지는 물론 보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치료를 선택하고자 치아교정 후 라미네이트를 결정한다.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와 환자가 선택해야 할 일련의 상호과정은 이렇게나 많다. CEREC은 물론 우리 병원에 왜 IT를 도입해야 하는지, 준비해야 할 내용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병원이 100년을 지속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분명한 청사진을 내 머릿속에 그려내고 싶었다.

라스베가스에서 좋은 공부를 했지만 깊은 고민을 뒤로 남겨둔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방바닥에 쪼그리고 누워 게으름을 피울 때였다. 남편의 책장 속에 놓여 있는 이상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쭈구리?”, “모노쭈그리?, 모노즈쿠리…..”

책에는 ‘일본기업이 왜 장수하는가? 그 핵심동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100년 이상 된 일본 기업이 50,000여개(200년 이상 된 기업도 3,100여개)인 반면, 중국은 1,600여개, 한국은 3개라는 다소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 있다는 것도, 그 숫자가 나라마다 상상하기 힘든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격차를 벌려 놓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저자는 핵심을 ‘모노즈쿠리’로 분석하고 있었다.

모노즈꾸리란 ‘문(文) 과 이(理)의 융합’방식으로 추구해야 하는 영역이다. 요소기술을 연결하여 고객에게 늘 보다 나은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제공하고, 새롭게 설계된 제품,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일련의 활동’(모노즈꾸리 경영학,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2009)이라 하였다. 굳이 해석하자면 제품과 서비스 자체 및 그 프로세스에 혼을 담는 장인정신 즉, 마이스터 정신을 의미하고 있다.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했다. 내가 죽고 나면 사라지는 병원이 아니라 100년 이상 가는 치과가가 되려면, 200년 가는 병원이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혁신을 해 나가야 하는지 충분히 그려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치료 프로세스 전체에 모노즈쿠리, 즉 장인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IT와 CEREC은 바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선택을 신속하고 유용하며 일관성 있게 처리해 주는 수단이다. 결국 CEREC이든 무엇이든 우리 치과의사들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올바른 치료, 더 나은 치료를 하고자 함에 있다. 어쩌면 IT와 융합하고 100년을 지속하는 병원을 만드는 핵심에 ‘모노즈쿠리’가 있다는 결론이 라스베가스에서 내가 찾고 싶었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기뻤다. 책에서 인용한 내용을 우리 치과에 응용하여 전체 치료 프로세스를 커다란 종이 위에 복잡한 도식으로 그려내니 ,모노즈쿠리 정신을 기초로 즉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떠올랐다.

첫째, 조직 능력과의 궁합이다. 우리 의료진, 스텝들이 이 프로세스를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기계만 가져다 두면 무언가 될 줄 알았는데, 의사 몇 명이 ‘CEREC’을 이해한다고 해서 병원 경쟁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커다랗게 표시해 둔 곳곳에 ‘X’표를 치니, IT를 도입하여 생긴 부작용, 즉 병목현상(Bottleneck)이 이곳저곳에 그려졌다. 프로세스에 걸쳐진 관련 인력의 통합적 업그레이드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하루에 2.0’이라 이름 붙인 나만의 프로세스를 그려내니 부족했지만 내심 뿌듯했다.

둘째, 자원관리(Resource) 이슈가 중요했다. ‘CEREC’은 리스계약이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마음이 인력, 예산, 환자의 수요(Demanding) 등을 따져보고 나서 얼마나 안이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정교한 프로세스를 만들어보니 인력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필요했다. 이에 따른 예산은 물론 그 프로세스에 감동할 예상 환자의 규모까지 준비 항목에 넣으니 좀 더 명확해졌다.

셋째, 원장의 혁신의지가 중요했다. ‘CEREC’을 통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치아디자인을 업그레이드 할 것인지, 치료공정의 지속적 혁신을 통해 환자의 편의성과 만족도 증대 수준은 어디까지 이룰 것인지, 이에 따른 경영 효율은 얼마나 상승시킬 것인지 등 원장의 혁신목표 설정에 따라 전체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 집요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해 볼 때 마다 커다란 설렘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100년 가는 병원’. 그 해법을 발견하게 되고 나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루에치과(구 다빈치치과) www.harue.com 대표원장 이한나 column_smil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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